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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 명창 오복녀 증언<1>
* 이는 2002년 11,12월호 [월간 국악](서울:국악중심) {명인 명창 박물관(7)}에 실린 글의 초고이다.

서도소리 명창 오복녀 증언<1>
현장 조사,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오복녀는 1913년 12월 17일(음력) 평남 평양시 상수동 300번지에서 아버지 오이훈과 어머니 백은찬 사이의 1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오복녀 집안에서 오복녀 외에 국악을 한 사람은 없다 한다.
아버지 오이훈은 오복녀 나이 20대 때 작고하였고 어머니 백은찬은 오복녀 나이 30세 때 세상을 떠났다 한다. 오복녀의 언니 오칠성은 오복녀보다 3세 연상으로서 원산으로 시집가서 살았는데 6.25 때 남쪽으로 오지 못했고 남북 분단 후 지금까지 생사를 모른다고 한다. 오복녀 남동생 오윤영은 오복녀보다 16세 연하로서 6.25 때 오복녀와 함께 남으로 피난을 왔는데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한다.
오복녀는 어려서 짐승 소리나 남 흉내를 잘 냈다 한다. 오복녀는 평양공립보통학교 6년 과정을 마치고 평양 서문여고에 다니다가 2학년 때 일본 제일여고로 전학하여 졸업을 했다.
오복녀 10대 때 한 동네에 이웃 언니 박윤봉이 살았는데 그 박윤봉 사랑채에 매일같이 수 십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도소리를 배웠다. 이때 오복녀는 석달간 그 사랑채를 찾아가 소리 선생 수업시 어깨 너머로 서도소리를 익혔다 한다.
오복녀와 친했던 박윤봉이 평소 음악에 소질이 있는 오복녀를 눈여겨 보고 있다가 어느날 사랑채로 놀러 오라고 했다 한다. 그래서 그 박윤봉의 사랑채로 놀러 간 오복녀가 어깨 너머로 배운 <공명가>를 불렀고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박윤봉이 무릅을 치며 감탄을 했다 한다.
그후 오복녀는 소리를 정식으로 배워야겠다고 느끼고 아버지 몰래 어머니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본격적으로 소리를 학습했다. 그리하여 정식으로 소리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스승의 제자들에게 소리를 익혔다. 그로부터 며칠 후 스승이 노래를 불러 보라 하여 했더니 감탄했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에게 들켜서 채찍으로 종아리를 피가 나도록 맞았다. 그래도 오복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가 허락을 했다 한다.
당시 오복녀의 스승은 장금화였는데 처음엔 사랑채에서 여럿이 함께 배우다가 나중엔 장금화를 독선생으로 모시고 오복녀 혼자 배웠다. 오복녀 나이 16세 때 장금화는 40세 가량이었다 한다. 그때 장금화 남편은 같은 사랑채에서 무용을 가르쳤는데 당시 나이가 52세 정도였다 한다.
장금화의 고향은 평양, 장기는 <수심가>였고 그 스승은 누구인지 잘 모른다고 한다. 오복녀는 장금화 문하에서 <관산융마>, <수심가>, <공명가>, <초한가>, <배따라기>, <신고산타령> 등 여러 소리를 사사했고 장금화 남편(성명 미상)에게는 검무와 승무를 배웠다 한다.
오복녀는 17세 때 충청도 사람 정학기한테 가곡을 배웠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가곡을 노래라고 했다 한다. 가곡에서 사용되는 목이 매우 다양하여 배워 두면 목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한다. 오복녀의 나이 17세 때 정학기는 73세 노인이었는데 추운 단칸방에 혼자 쓸쓸히 사는 홀아비였다 한다. 오복녀는 이때 다른 사람 3년 배울 것을 6개월만에 모두 배웠다 한다.
오복녀는 17세, 비슷한 시기에 석달간 정남희한테 20분 정도 되는 가야금산조 한바탕을 배웠는데 이때 정남희가 오복녀의 솜씨를 보고 감탄했다 한다. 오복녀가 처음 정남희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우려 할 때 정남희가 오복녀한테 평양 사람은 산조를 못하니 가라고 했다 한다. 그런데도 오복녀는 굽히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산조를 배우고 싶어서 매일같이 정남희의 산조 지도 시간이 끝날 때까지 주변에서 기다렸고 결국 정남희가 이북 사람 지독하다며 오복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한다. 이렇게 하여 산조를 가르쳐 주기 시작한 정남희가 나중에는 오복녀한테 산조를 연주해 보라 하고 곁에서 장고 반주까지 해주었다 한다.
1990년에 오복녀가 북한에 공연을 하러 갔을 때 누군가 산조를 타기에 들어보니 정남희 가락이었다 한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이를 물어 보았고 정남희가 월북하여 북한에서 산조를 가르쳤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오복녀는 17세 때 정남희한테 산조 외에도 가야금병창 단가 <대장부한>과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사사했다 한다.
오복녀는 18세 때 6개월 동안 김상순에게 양금풍류를, 주수봉에게 12잡가를 배우는 동시에 같은 시기 하규일에게 궁중무용 국화무와 사고무, 가사 <황계사>, <춘면곡>, <길군악>을 사사했다.
오복녀는 젊어서 일본 노래도 배웠는데 남산정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성명 미상의 일본인 여자 한명에게 일본 민요, 시음, 역사극, 일본 유행가를 사사했다. 당시에는 가야금병창으로 이런 일본 노래를 해야 인기가 있었다 한다. 당시에는 국빈 연회시 남산정 등에서 공연을 했다 한다.(계속)

2003년3월8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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