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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한국음반학 제12호](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2002년)에 실린 글의 초고임.
유성기음반시대 중고제 명창 김창룡의 손녀 김차돈 증언자료<1>
조사,글 /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 일러두기 -
○ 본 자료는 유성기음반시대에 활약한 중고제 판소리 명창 김창룡의 손녀 김차돈이 필자에게 증언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1990년대 초반 필자는 현장 조사를 통해 김창룡과 김차돈의 가족 관계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1995년 필자는 {콜럼비아 유성기원반(2) 판소리 명창 김창룡과 그 손녀 김차돈}이라는 복각 음반(엘지미디어 LGM-AK002, 1CD)을 기획하였고 이 음반의 해설서에 이들의 혈연 관계와 관련자료를 최초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때 김차돈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고 직접 만나지 못하였다. 그후 4년간의 추적 조사 끝에 1999년 일본에 살고 있는 이 김차돈과 극적으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수차례 이 가문과 옛 국악에 대한 대담을 나눌 수 있었다. 이에 그 증언 내용을 여기 상세히 정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 여기 정리된 김차돈 증언자료는 1999.1.6.09:25∼10:25, 1999.4.2.09:05∼09:10, 1999.5.19.17:40∼17:45, 1999.6.22.17:00∼17:30에 이루어진 대담 내용이다.
참고로 김차돈은 현재 건강이 양호한 편인데 필자가 지난 3년간 수차례 새로운 음반 취입을 주선, 권했으나 성사 단계에서 번번히 일부 자손의 반대에 부딪혀서 오랫동안 애써 공부하고 지금까지 고히 간직하고 있는 그 귀한 국악이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채 묻혀 있는 상태이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원고는 사실 그 계획했던 김차돈 독집 CD음반의 해설서에 발표하고자 했던 것이다.
○ 이 증언자료 글은 2002년 10월 9일 정리, 완성되었다.
김차돈(본명:김채돈)은 1924년 12월 28일(음력) 충남 홍성군 갈산면에서 부친 김세준과 모친 정용분 사이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김차돈은 조부 김창룡을 어려서 보았는데 김차돈 나이 6세부터 오랫동안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한다. 김창룡, 김세준, 김차돈 가족은 서울 권농동 자택에 거주했다 한다.
김창룡은 성격이 급하고 경우가 밝았다 한다. 김세준이 마흔이 넘어서도 잘못을 하면 아버지 김창룡한테 매를 맞았다 한다.
김창룡은 성품이 괄괄해서 제자가 별로 없었는데 한때 임방울이 김창룡한테 적벽가를 깨끼는 걸 김차돈이 보았다고 한다.
(필자 주 → 이 말 뜻은 임방울이 다른 이한테 이미 적벽가를 배운 상태에서 김창룡을 찾아가 다른 데서 익힌 소리를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다듬고 김창룡한테 추가로 몇 대목은 새로 배워 자신의 적벽가에 살을 붙이고 윤기가 나게 하는 학습을 했다는 걸 의미한다.)
김창룡은 목청이 굉장히 좋았고 판소리를 아주 잘해서 통정 직함의 벼슬을 받았으나 그 교지를 자손들이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 분실되고 말았다 한다. 김차돈은 어려서 김창룡이 궁궐 드나드는 걸 자주 보았고 김창룡이 작은 부인이랑 사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 한다.
김창룡의 본 부인(성명 미상)은 충남 공주 태생으로 예쁘고 다정다감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한다. 김창룡의 본 부인은 파주 장단에서 살았는데 남편 김창룡이 중년에 폐병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자신의 넙적다리를 잘라 먹여서 살려냈다 한다. 그래서 장단 마을에서 효부비를 세워 주었다 한다. 김창룡의 본 부인과 그 친정 사람들 가운데 국악 한 이는 한명도 없다 한다.
김창룡은 김차돈 나이 20세가 넘어서 타계했고 김창룡 본 부인은 김창룡이 작고하고 나서 일주일 후 세상을 떠났다 한다. 김차돈의 증언에 의하면 김창룡 부부는 작고 후 자식들이 원해서 모두 화장한 것으로 안다고 한다. 그리고 김세준은 타계 후 서울 공덕동 어느 절에 모셔졌다고 한다.
김차돈은 작은 할아버지 김창진이 국악 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지 김창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창룡과 김창진은 형제간이지만 김창룡은 서울 살고 김창진은 시골에 거주했고 형제간에 서로 왕래가 없었다 한다.
김세준은 명창 김창룡의 장남으로 한성준한테 판소리 고법을 배웠는데 1960년경에 61세 정도의 나이로 작고했다. 김차돈은 부친 김세준이 판소리 하는 건 보았으나 누구한테 배운 소리제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김차돈은 부친 김세준한테 단가 <백발가>(김세준 작사 작곡) 단 한곡을 배웠다 한다. 김세준은 본래 목이 좋았으나 젊어서 약을 잘못 복용하고 나서 목이 크게 손상되어 명창으로 행세하지 못했다 한다.
정용분은 충남 홍성군 갈산면 태생이며 1980년대 후반에 8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한다. 김차돈의 모친 정용분과 그 친정 식구들 가운데 국악 한 이는 한명도 없다 한다.
김세준은 4형제 중 장남이었고 그 밑에 남동생이 차례로 김중대, 김모씨, 김모씨가 있었다 한다. 김중대의 아들이 탤런트 김인태이고 김중대 바로 밑에 남동생 김모씨는 파주의 어느 학교 교사였을 때 여교사와 혼인했고 그후 다른 곳으로 전근, 교동국민학교 교장을 하였다 한다. 김종선, 김대준, 김부월은 김차돈이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김차돈 바로 밑에 여동생은 김채숙, 막내 남동생은 김귀남이라고 한다. 김채숙은 현재 미국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 김귀남은 김차돈보다 10세 연하로서 양악기 드럼 연주를 하는데 현재 서울에서 살고 김귀남 아들 또한 현재 서울에 거주하면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한다. 김차돈은 동생 김채숙과 김귀남의 연락처를 모른다고 한다.
김차돈은 슬하에 5남매(1남 4녀)를 두었는데 모두 음악 재주는 좋으나 전부 국악 안시켰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한다.
김차돈은 9세 무렵 1년간 서울 종로구 익선동 조선성악연구회와 학원에서 강태홍한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사사했는데 가야금산조는 맨처음부터 중중모리까지 배우다가 학습을 중단했다. 이때 가야금병창은 단가 <객래문아>, <공도난이>, 춘향가 중 <쑥대머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등을 사사했다 한다.
김차돈은 10세 무렵에 수개월 동안 조선성악연구회 바깥채에서 이동백한테 단가 <초한가>와 <죽장망혜>를 사사했다. 이때 5명 정도가 함께 배웠는데 <백발가>(젊어 청춘)는 이동백한테 못배웠다 한다. 이동백은 기골이 좋고 미남자였는데 김차돈은 이동백의 성격이 괄괄하고 급해 무서워서 많이 못배우고 조금 사사하다 중단했다 한다.(계속)
2003년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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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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