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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2002년 2,3월호 합본 [월간 국악](서울:국악중심) {명인 명창 박물관(2)}에 실린 글의 초고이다.
판소리, 가야금 명인 김연수<2>
글,자료 제공/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김연수는 본래 수리성과 양성이 섞인 성음이고 중성도 많이 나오는 목을 지녔는데 젊어서 목이 아주 좋았다 한다. 수리성은 여러 구성이 있는 성음을 말하고 양성은 높이 지를 수 있는 목을 말한다고 한다. 수리성, 중성, 하성, 양성이 다 있어야 소리가 잘된다고 한다.
철성은 판소리 하기에 좋지 않은 목이고 반면에 수리성은 못생겨도 귀여운 사람처럼 귀여운 맛이 있는 애원성, 쉰 듯하면서도 지르면 다 올라가고 은은하게 나오는 목을 말한다고 한다. 이중선이 철성, 양성이라 한다. 이화중선은 아편을 하고 그래도 목소리가 천성적으로 아주 좋아서 힘을 안들이고 줄줄 잘했다고 한다. 이중선은 <육자배기>를 잘 불렀다 한다.
김연수는 이선유, 장판개, 김창진, 백점봉, 방진관, 심상건, 박중근, 한성기, 신관용은 잘 모른다고 한다. 한성준은 충청도 사람으로 북을 잘쳤고 이동백은 충청도 사람인데도 전라도 사람 이상으로 소리 잘하고 너름새가 좋았다 한다.
송만갑은 늙었어도 상성, 고음(양성)이 젊은 김연수보다 더 잘 나왔다 하며 흥보가가 특기였다 한다. 다른 이들은 가사책이 있었으나 이 송만갑은 그런 책이 없었다 한다.
김정문은 송만갑의 수제자라 한다. 너름새 좋고 소리를 아주 잘했으며 아편을 했는데 송만갑제를 자기 나름대로 맛있게 바꿔서 불렀다 한다. 김정문은 김연수와 함께 한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김연수가 송만갑한테 배운 것과 다르게 소리했다 한다.
김창룡은 상, 중, 하청 모두 아주 좋았으며 너름새로 한목 본 명창이라 한다. 정정렬은 전라도 사람으로 춘향가가 특기였고 김소희가 이 정정렬한테 배웠다 한다. 정정렬은 가사를 소상하게 잘했다 한다. 정정렬의 제자 중에는 김여란이 하청을 잘 구사했다 한다.
판소리 명창 강소춘은 마산 사람으로 김연수보다 3∼4세 연하라 한다. 오태석은 국창 박록주와 함께 살았는데 어렵게 살다가 죽었다 한다. 신금홍은 전라도 사람으로 박록주 또래이며 인물 좋고 <육자배기>를 잘했는데 가족도 없이 외롭게 지내다가 일제 때 중국사람 집에서 아편 때문에 참혹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김종기는 김연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으로서 가야금, 설장고, 거문고, 북, 대금 등을 두루 잘한 재주꾼이었다 한다. 김종기는 김연수 25세 무렵에 작고했는데 김초향이 김종기 작고 직전 병문안 가자고 해서 김연수가 따라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김초향은 판소리를 아주 잘한 사람으로 대구에서 명창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 김초향을 김종기가 누님이라고 불렀고 김연수는 김초향에게 형님이라 했다 한다.
김남수는 키 크고 인물 좋고 김연수보다 2세 가량 연상이며 김소희의 이모인데 오래전에 작고했다 한다. 김남수의 소리는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박동실은 전라도 사람으로서 김연수가 부산에서 박동실이 소리하는 걸 단 한번 목격했는데 소리목은 나빴으나 정말 소리를 잘한 이였다 한다. 이때 김연수와 박동실이 함께 공연을 했다 한다.
조상선은 같이 월북한 정남희 또래이고 조소옥과 한 집안 사람으로서 소리를 잘했다 한다. 조소옥은 전라도 사람으로 김연수보다 4∼5세 연하라 한다. 백락준, 박팔괘, 김금암(김병호)에 대해서는 김연수가 말만 조금 들었다고 한다.
박종기는 김연수가 요리집, 잔치집에서 종종 목격했는데 다리를 절고 다녔고 서울에서 대금 연주자로 유명했으며 누가 듣더라도 감동받게끔 대금을 아주 잘 불었고 특히 굿거리 연주가 장기였다 한다. 김연수는 그 굿거리가 엇중모리 장단이라고 하였다. 김연수는 봉장취라는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연수는 현재 외손자 안동혁(현재 컨트라베이스 연주자)이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모시고 살고 있다. 본 조사시 김연수 명인이 옛 친구 방금선을 찾았고 그리하여 필자가 이 두 명인을 상봉시켜 드려 이분들은 며칠간 함께 숙식하며 밤새워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연수는 작고한 오비취, 신숙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신숙은 방금선 또래이며 인물 좋고 단가를 잘했는데 외롭게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김연수보다 이소향이 어려서 이소향이 김연수 보고 형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이소향은 미아리에 집이 있었고 아이가 여럿 있었다 한다. 이소향의 스승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병창, 서도창, 서울노래 등을 두루 잘 불렀다 한다.
한승호는 한갑득 일가로서 소리를 곧잘 했고 김연수 보고 누님이라 불렀다 한다. 김연수는 창극 단체에서 활동한 적은 없으며 국악 안하고 평범하게 지낸지가 40년 정도 된다고 한다. 지금은 국악 안한지가 오래돼서 판소리고 가야금이고 모두 다 잊어버렸다 한다.(2001.1.14.14:30∼16:30.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김연수 자택 증언)
2002년3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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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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