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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2002년 2,3월호 합본 [월간 국악](서울:국악중심) {명인 명창 박물관(2)}에 실린 글의 초고이다.
판소리, 가야금 명인 김연수<1>
글,자료 제공/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판소리 인간문화재 남자 명창 동초 김연수는 오늘날 많이 알려져 있으나 판소리, 가야금의 여류 명인 김연수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필자는 이 김연수 할머니의 존재를 음반으로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미 작고한 줄 알았었다. 그런데 필자가 2년전부터 KBS-1FM <<흥겨운 한마당>>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 방송을 하고 있는 {희귀음반으로 만나는 명인 명창}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 김연수 할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방송에서 필자가 김연수 할머니의 옛 음반을 소개하였고 이 방송을 들은 황병기 교수와 김연수 할머니의 외손자 안동혁에 의해 그 김연수 할머니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필자가 현장 조사한 김연수 할머니의 학습 내력과 발자취, 그리고 그간 수집된 관련 문헌, 음반자료를 여기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바이다.
1939년 1월 3일자 {조선일보} {國唱 宋萬甲氏 宿 로 別世}라는 기사에 실린 {朝鮮聲樂硏究會 金容承氏 談}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송선생은 우리 성악회 뿐 아니라 우리 구악계의 원로로써 우리들의 의망(倚望)을 하는 바가 태산과 가헛는데 일조에 별세를 하시니 우리 회원으로서 애통한 바는 말할 것도 업고 일반 우리 구악계를 위해서도 여간 손실이 아닙니다 씨의 후진으로서는 박록주(朴綠珠) 김연수(金練守) 김광순(金光淳)과 가튼 명망잇는 가수들이 잇서 선생의 업적을 뒤 이을 만하고...]
이로 보아 김연수(金練守)가 당시 송만갑의 수제자로 꼽혔음을 알 수 있다. 1939년 2월호 {實話 第二卷 第二號 二月號 通卷第六號}(京城:朝鮮鑛業時代社) 90∼92쪽 {國唱 宋萬甲 一代記}를 보면 이와 비슷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송만갑씨의 공적이 만타고 한다. 그가 가르킨 제자 수효는 千명 이상이며 권번 수효도 진주(晉州), 마산(馬山), 부산(釜山), 동래(東萊), 대구(大邱), 전주(全州), 광주(光州) 등 十여 처이며 박록주(朴綠珠), 김련수(金練洙), 김광순(金光淳)과 가튼 명창들이 그 밋테서 훈련바든 사람들이다.]
두 문헌의 김연수 한자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데 {金練守}가 옳은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이 김연수 명인을 직접 만나 면담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김연수(金練守:예명, 본명:김종수, 女)는 1911년 11월 3일(음력, 호적도 동일) 경남 마산시 석동 산호리(지금의 원정) 222번지에서 부친 김철조와 모친 김모씨 사이의 2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모친 김모씨는 김연수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나 이름을 잘 모른다고 한다. 김연수의 부모는 모두 농사일을 했고 국악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연수는 남동생 둘과 여동생이 하나 있으나 이들과 연락이 두절된지가 몇 십년 되었다고 하며 이 형제들 모두 비국악인이라 한다.
김연수는 10대 때 마산에서 한량 한모씨(창원 사람)에게 양금풍류와 가야금풍류를 익혔고 전라도에서 온 어떤 사람한테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그리고 김연수는 10대 후반에 마산에서 꽤 오랫동안 강태홍에게 가야금산조 한바탕을 사사했다.
김연수는 10대 때 무명 소리꾼에게 판소리를 배우다가 20대 초반에 진주에서 송만갑한테 단가 <진국명산>과 <백구타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사사했다. 김연수는 송만갑의 남자 성음을 그대로 땄다고 한다. 송만갑 아들 송기덕이 일제 때 경부를 지냈는데 김연수는 송기덕을 보진 못했고 말만 들었다고 한다.
김연수는 송만갑 다음으로 전라도에서 2년간 유성준한테 수궁가 한바탕을 배웠다. 그리고 김연수는 20세 무렵에 김윤덕 등 5∼6명과 함께 정남희한테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20대 때 서울에서 며칠간 안기옥에게 가야금산조를 사사했다. 정남희와 안기옥은 나이가 서로 비슷한 친구 사이였고 가야금산조 가락도 비슷했다 한다. 정남희는 산조 연주시 발발성이 있으나 재치있게 연주를 했고 안기옥은 정남희보다 이름이 덜 났지만 가야금을 잘했다 한다. 춤은 김연수가 어려서 마산과 진주에서 무명인들한테 조금 배웠으나 취미가 없어서 잘 안추었다 한다.
김연수는 19세와 22세 무렵에 일본으로 가서 오케이(Okeh) 음반회사에서 여러곡을 취입, 한국 서울 시에론(Chieron) 레코드회사에서 여러장의 음반을 녹음하였고 40여년 전에는 한국 대도레코드사에서 가야금병창 장시간음반(LP)을 낸 바 있다.
김연수가 오케이에서 가야금병창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고 일본에서 공연을 할 때 임방울, 이화중선, 이중선도 함께 공연하고 같은 곳, 같은 때 같이 다니며 음반을 취입했다고 한다.(계속)
2002년3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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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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