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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창 송만갑} 특별 행사(2001.12.1.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전시되는 국악음반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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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2월의 문화인물
국창 송만갑을 기리는 국립국악원의 특별기획공연에
전시되는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목록
일시: 2001년 12월 1일(토) 오후 3시
장소: 국립국악원 우면당
= 국창 송만갑 관련자료 전시 =
전시자료 제공: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전시물 1] 송만갑 전신 사진. 현존하는 송만갑 사진 가운데 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으로서 1930년대 송만갑의 만년 모습이다. 송만갑 오른편에 걸려있는 설명에 <<國唱 宋萬甲>>이라는 문구가 보인다.(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자료 관리번호 MIPHOTO-05700)
[전시물 2] 송만갑과 일제 때 쌍벽을 이룬 명창 이동백.(MIPHOTO-05683)
[전시물 3] 창극 <<배비장전>>(동양극장)에 출연하기에 앞서 분장 중인 이동백과 송만갑(오른쪽). 1937년 3월 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이다.(MIPHOTO-05689)
[전시물 4] 송만갑에 관한 글이 실려있는 책자. 정노식 저서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 1940년)
[전시물 5] 송만갑이 1913년에 일본축음기상회에서 녹음한 <농부가> 유성기음반. NIPPONOPHONE 6132 農夫歌 宋萬甲(MISP-1009)
[전시물 6] 송만갑이 1913년에 일본축음기상회에서 녹음한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사랑하는 데> 유성기음반. 닛뽀노홍 K176B(6127) 심봉사사랑하는데 宋萬甲(MISP-0005)
[전시물 7] 송만갑이 1930년에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녹음한 단가 <진국명산> 유성기음반. Columbia 40145-A(21005) 短歌 鎭國名山 宋萬甲 鼓韓成俊(MISP-1095)
[전시물 8] 송만갑이 1930년에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녹음한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령> 유성기음반. Columbia 40219-A(21006) 興甫傳 박타령 宋萬甲(MISP-1019)
[전시물 9] 송만갑과 그의 아들 송기덕의 단가, 판소리 유성기음반 목록이 실린 책자. 노재명 편저 {판소리 음반 사전}(서울:이즈뮤직, 2000년)
[전시물 10] 1930년대 콜럼비아 제품 유성기. 송만갑이 활동한 일제시대에는 이 기계로 음반을 재생하여 판소리를 감상하였다.(MIPHONE-0001)
[전시물 11] 송만갑의 유성기음반을 CD로 복각한 <<판소리 5명창>> 음반. 신나라레코드 제작(MICD-0536)
[전시물 12] 송만갑의 유성기음반을 CD로 복각한 <<판소리의 전설 5명창>> 음반. 노재명 기획, 엘지미디어 제작(MICD-0219)
[전시물 13] 아래 왼쪽부터 김창룡, 송만갑, 김창환. 위 왼쪽부터 박록주, 심상건, 한성준. 1926년 11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이다.(MIPHOTO-01264)
[전시물 14] 송만갑의 사진이 실린 책자. 조선가요연구소의 {정선조선가요집}(일본 콜럼비아사, 1931년). 오른쪽 페이지 맨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진이 송만갑의 모습이다.
[전시물 15] 1930년 11월 28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노래 뒤에 숨은 설움(4) 국창 가수의 고금록-송만갑 편>> 기사. 송만갑 사진 수록. 이 스크랩 노트 오른쪽 페이지의 왼편 기사가 송만갑 관련자료이다.
[전시물 16] 1938년 5월 27일 조선성악연구회 5주년 기념 단체 사진. 맨위 중앙에 갓 쓰고 서있는 이가 송만갑이다. 김연수 저서 {창본 춘향가}(서울:국악예술학교 출판부, 1967년)
[전시물 17] 6.25 전쟁 발발 무렵 서울에서 열린 5명창 추모 합동제사 기념 사진. 이 제사에서는 스님들이 염불 천도를 해주었으며 추모 공연은 없었고 제사 후 참석자들 전원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졌다 한다. 이때 강장원, 고일연, 김광식, 김윤덕, 김재선, 박귀희, 박도화, 박록주, 박석기, 박헌봉, 백점봉, 성금연, 성순종, 신숙, 오태석, 이동안, 이정업, 임유앵 임춘앵 자매, 임종선, 정남희, 정득만, 조봉란, 조상선, 조소옥, 지영희, 5명창의 부인들과 친척 자손 등이 참석했으며 송만갑의 아들 송기덕과 송영덕, 송만갑의 조카 송억봉(송업봉?)은 당시 오지 않았다 한다.(MIPHOTO-05022)
[전시물 18] 지리산 진입로에 있던 <<국창 송만갑 선생 추모비>>(1990년 노재명 촬영, MIPHOTO-00418)
[전시물 19] 송만갑의 남자 수제자 장판개. 송만갑은 제자 양성에 많은 힘을 쏟았으나 장판개, 김정문, 박봉래, 김록주(김해)와 같은 수제자들이 일찍 요절하여 송만갑의 훌륭한 소리가
상당 부분 맥이 끊기고 말았다.(MIPHOTO-05762)
[전시물 20] 송만갑의 여자 수제자 김해 김록주. 김록주는 여류명창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성기음반(제비표조선레코드)을 들어보면 30여세에 남긴 녹음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남성적이고 높은 기량의 소리를 들려준다.(MIPHOTO-05740)
[전시물 21] 송만갑의 수제자 장판개, 김정문, 박봉래, 김록주가 모두 요절한 후 첫손 꼽히는 제자로 부상했던 김연수. 지금은 국악을 안한지 오래되어 단가 <진국명산> 사설 조차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올해 한국 나이로 91세이다.(2001년 1월 14일 노재명 촬영)
2001년11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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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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