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이 글은 [한국음반학 제11호](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2001년) 논문집에 실린 노재명의 {20세기 한국전통불교음악 음반 총목록과 인간문화재 증언자료} 중에서 발췌한 것임.
영산재 인간문화재 장벽응 증언<2>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장벽응 스님은 30대 때 신충근(대금), 이충선(피리), 임원식(해금 장고 호적) 등의 악사와 함께 영산재를 하였다 한다. 장벽응 스님이 화장사에서 서울 삼청동 삼각사로 옮긴 것은 31세 때라 한다.
장벽응 스님은 안채비소리는 재를 올리는 절의 의식 담당 안채비들이 부르는 소리이고 겉채비소리는 외부 초청 범패 전문 스님이 부르는 소리라고 하는 구별은 존재하지 않고 범패승이라면 안채비, 겉채비 소리 모두 다 가능하다고 한다. 안채비는 불공 소리이고 겉채비소리는 범패, 즉 홋소리와 짓소리를 말하는 것이라 한다.
장벽응 스님은 1945년 8.15 광복 직전에 김포공항 길 닦는 보국대, 강화 황산도에서 길 닦는 중노동 강제 노역을 하였다 한다.
장벽응 스님은 노년에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1리 문수산 자락에 자리잡은 문수사 주지를 맡았고 그 절과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산다고 하였다.
장벽응 스님은 모친이 데려다 길러온 처녀와 21세 때 화장사에서 혼인하였는데 그 처녀는 어떤 스님의 손녀딸이라 한다. 이 부인은 오래전 작고하였고 두 번째 부인 박학점(계해생)은 문수사에 몸 담고 있다 한다.
장벽응 스님은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둘은 예전에 잃었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살아있다 한다. 이 가운데 아들이 스님으로서 문수사에 있다가 다른 절로 옮겼는데 안채비 불공만 조금 하고 있다 한다.
장벽응 스님은 1973년 박송암 스님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한다. 장벽응 스님이 오랫동안 보관해 오던 범패 소리책은 몇해 전에 문수사 화재시 불타 없어졌다 한다. 장벽응 스님은 화장사에서부터 여러 후배 스님들에게 상주권공 등을 가르쳐 왔으나 이렇다 할 내세울 만한 제자는 많지 않다고 한다.
장벽응 스님이 1998년에 비매품으로 낸 범패 음반(김포문화원 2CD)은 1996년에 문수사 포교당에서 혼자 징치며 소리한 녹음이라고 한다. 장벽응 스님은 열반하기 몇해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1996.10.9.12:30∼13:00,1998.12.1.14:00∼15:00,1999.1.3.14:20∼15:00.장벽응 스님 증언)
* 필자는 이 대담 외에도 1997년 3월 18일 서울 신촌 봉원사에서 열린 정지광 스님 열반 49재(영산재) 휴식시간에 박송암, 장벽응, 이일응 등의 스님이 담소 나누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할 수 있었는데 유치원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과 순진한 대화가 오고 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끝)
2001년11월15일
|
| 2004-07-10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