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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96년 국악기록보존연구소(명인기획)/엘지미디어(LG소프트)에 의해 복각 제작된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9) 함동정월 가야금산조 병창 판소리 남도민요} 음반(LGM-AK009, 1CD)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가야금,판소리 명인 함동정월<1>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함동정월(咸洞庭月, 본명:咸金德, 아호:昭芸)은 1917년 8월 25일(음력) 전남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에서 아버지 함일권과 어머니 박양근 사이의 2남 5녀 중 여섯째(넷째 딸)로 태어났다.
함동정월의 부친은 판소리 북, 피리 명인이었고 외삼촌인 박창주는 판소리, 가야금 명인이었다. 함동정월의 외삼촌 박창주는 국악 작곡가 박범훈의 조부이며 가야금산조 명인 최옥산은 함동정월의 육촌 형부 뻘이 된다. 그리고 함동정월의 큰 오빠 함률도 젊어서 대금과 가야금에 재능을 보였다 한다. 함동정월의 뛰어난 음악 재능은 이와 같은 집안 내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함동정월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11세 때 광주 갑부 김창수의 양녀가 되었고 국악으로 돈을 벌기 위해 광주권번에 들어갔다. 이 때 함 명인은 그 권번에서 1년 6개월 동안 박모(朴某) 등의 문하에서 시조, 양금, 가야금, 승무, 검무 등을 배웠다.
그는 광주권번에서 수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12세 때 김복술 문하에서 가곡을 배웠다. 그리고 김군옥(김채만 제자) 문하에서 적벽가, 흥보가 토막소리를 배웠고 임공교(공창식 제자)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그 후 최옥산 문하에서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사사했다.
16세 때 동아일보 목포 지국장이었던 방모(方某)가 함 명인에게 머리를 얹어주고 중국 동정호에 뜬 달처럼 예쁘다고 하며 [동정월]이라는 예명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목포권번에서 예기 수업을 받았다. 19세 때는 오수암(김창환 제자) 문하에서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함동정월은 지금으로 부터 60년 전인 1936년에 일본 콜럼비아 음반회사가 광주에서 개최한 콩쿨 대회에 참가하여 판소리로 입상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콜럼비아에서 음반을 취입하게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다음은 함동정월의 유성기음반 취입 회고담이다.
<<목포 무안에 목우암이라는 절에서 판소리 백일 공부 또 했어. 나는 오수암 선생하고 판소리 (공부하러) 가고 오수암 선생한테 춘향전, 심청전 배웠어. 다는 못 배왔지.
목우암서 백일 공부하고 와서 한 두어달 쉬니까 광주에서 콩쿨 열린다고, 동경 콜럼비아 회사에서 콩쿨 연다고 해. 콜럼비아 회사 문예 부장이 한국 사람이었어. [다를 이]자 이하윤 씨였어. 동국대학 학장으로 계셨어, 나중에. 그래서 콩쿨 나가라고, 권번에서 꼭 나 혼자만 가래, 광주로. 그래 광주로 갔더니 광주에서 뭐 훌륭한 사람들 죄 나왔잖아? 신광원인가 큰 방, 손님 많이 와서 연회하는 데럴 다 치워 놓고 거기서 콩쿨 했어. 열아홉살 먹던 봄이야. 공부 시작한 지 칠년 만이지. 그러더니 광주 사람 하나도 안 뽑히고 제일 어린 내가 뽑혔대. 그래서 일본 간 거야. 울며 겨자 먹기로. 난 공부 더해 갖고 간다 그랬어. 지금은 어리니까 안하겠다고. 그랬더니 안된다고 꼭 좀 하러 가야 한다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갔어.
열아홉 가을에 일본에 가서 취입했어. 일본에 가니께 여관 있지. 기누꾸니아 라는 호텔이 있는데 일본에서 취입할 때 오십일 있었어. 정금도, 김인숙, 고재덕이, 이중선이, 여럿이 갔었어. 취입한 건 춘향전, 심청전 다 했지. 주로 판소리. 삼분짜리, 그 때는 삼분이야. 가야금도 산조 중중머리하고 자진머리 좀 넣어주고. 근디 고수가 맘에 안 들었어. 거기 심바시 가니까 아사쿠사 공원 뒤에 한국촌이 있었거든. 거기 있다 하면서 여기서 고수럴 못 데려 가게 하더니, 가 보니까 그 사람이 치기는 친디 너무 호흡이 안 맞어. 그래서 애 먹었어 레코드 판에는 내 독소리만 넣었어. 춘향가, 심청가, 가야금산조, <육자배기>, <흥타령>까지, 병창까지 다 했어. 병창은 <청산얼 가만히 바라보니> 그거 넣었지. 춘향이가 이별 다 하고 혼자 앉아서 청산 바라보고 임 그리며 우는 대목이여. 그때 그거 나와서 참 힛트했대. 나도 아직 갖고 있는데 누굴 빌려 줬드니 안 주데.>>
(함동정월 구술, 김명곤 김해숙 편집 {물은 건너 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 봐야 알거든} 서울:뿌리깊은나무, 1991, 49∼52쪽)
이 콤팩트디스크에 복각된 녹음과 유성기음반 가사지에 적힌 기록 등을 검토해 볼 때 유성기음반 취입에 대한 함동정월의 기억은 거의 정확했다. 녹음 시기를 비롯해서 함께 취입하러 간 사람들, 취입 곡목이 기록과 일치했다.
상기 증언에 의하면 함동정월은 콜럼비아에서 음반을 취입할 때 일본에 살던 사람이 고수를 맡았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한다. 콜럼비아 회사 측에서 일본에 고수가 있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고수를 못 데려 가게 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취입 경비를 줄이려고 그리 한 것 같다. 함동정월의 유성기음반에 장고 반주자로 참가한 사람은 김성채와 정금도 두 사람이다. 그 가운데 함동정월이 호흡이 맞지 않았다고 말한 고수는 김성채일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고수 가운데 함동정월이 말하는 고수는 당시 일본에 살았다고 하는데 정금도는 함동정월과 함께 일본에 음반을 취입하러 갔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성채(金成彩)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김성채는 함동정월의 유성기음반에서만 이름이 나타나며 함동정월이 가야금산조, 병창, 판소리, 남도민요를 취입한 7장의 유성기음반 가운데 남도민요 음반 1장을 제외한 나머지 6장의 음반에 장고 반주자로 참가했다. 함동정월의 남도민요 음반 1장은 정금도가 장고 반주를 맡았다.
함동정월은 이 콤팩트디스크에 복각된 가야금산조, 병창, 판소리, 남도민요 유성기음반 7장 외에도 다음과 같이 음반 2장에 장고 반주를 녹음한 바 있다.
Columbia 40755(1 22429)
西道雜歌 黃海道山念佛 鄭錦桃
細笛高載德 奚琴李忠善 長鼓咸洞庭月
Columbia 40755(2 22440)
西道雜歌 자진배따라기 鄭錦桃
細笛高載德 奚琴李忠善 長鼓咸洞庭月
Columbia 40758(1 22427)
民謠 豊年歌 鄭錦桃
細笛高載德 奚琴李忠善 長鼓咸洞庭月
Columbia 40758(2 22428)
民謠 京興打鈴 鄭錦桃
細笛高載德 奚琴李忠善 長鼓咸洞庭月
이 콤팩트디스크에 복각되지 않은 상기 2장의 유성기음반은 정금도(鄭錦桃)의 민요 음반을 복각할 때 수록될 예정이다.
당시의 관례 대로라면 콜럼비아에서 한번에 여러 녹음을 해놓은 후 몇 달 간격을 두고 한 장씩 나누어 발매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함동정월은 1936년에 콜럼비아에서 한 차례 취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함 명인은 일제 때 콜럼비아에서만 음반을 취입했고 다른 회사에서는 유성기음반을 내지 않았다. 따라서 함동정월의 일제시대 녹음은 이 콤팩트디스크에 복각된 콜럼비아 유성기음반에만 남아있다.(계속)
2001년4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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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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