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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조순애<1>
* 이 글은 {조순애의 국악세계} 음반(CKJCD-002, 1CD, 고수:장송학, 음반 해설 및 사설 채록:이보형 노재명, 1998년 녹음, 1999년 지구레코드 제조)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판소리 명창 조순애<1>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조순애 명인은 1929년 9월 21일(음력, 호적:1929.9.22)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또는 석고리:불분명함, 본적 신고:서울)에서 아버지 조명수, 어머니 박모암 사이의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조순애의 본명은 조순희인데 집안 어른들이 순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한다. 그리고 과묵하고 얌전한 성품을 지녀 주변사람들은 조착실이란 별호로 부르기도 한다.
조순애 집안은 대대로 능주에서 살아온 토박이로서 많은 국악 명인들이 배출된 유명하고도 유서깊은 가문이다. 조순애의 좋은 목구성과 특별한 음악재능은 바로 이같은 가문의 혈통에서 비롯되었다.
조순애의 부친 조명수는 능주 사람으로서 가야금 산조와 풍류의 거장이었다. 조명수는 아주 미남이었고 멋덩어리였기에 별호가 조떵어리 또는 조떵구로 불렸는데 조순애 나이 9세 때(1937년) 아버지 조명수가 작고하여 조순애는 부친이 가야금 연주하는 모습을 못봤다 한다. 조명수가 판소리 명창 김연수와 친구로 지냈다 하니 조명수의 출생시기는 1907년 무렵일 것이고 그렇다면 조명수는 31세 무렵에 작고했을 것이다. 조순애는 부친 조명수의 스승이 누구인지, 조명수한테 배운 제자는 누가 있는지 등에 대한 상세한 내력은 들은 바 없고 조명수의 가야금이나 사진 등의 유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조명수가 일제 때 영화 유충렬전에 왕으로 출연한 적이 있으니 그 필름이 남아있다면 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당시 조명수가 이 영화 촬영 도중 말에서 떨어져 크게 욕봤다고 한다. 조명수는 주로 서울에서 활동했는데 지금 판소리 활동을 하는 임향님의 부친이 서울서 조명수를 따르는 여자들의 연애편지 심부름을 많이 했다 한다.
조순애의 모친 박모암 역시 능주 사람인데 국악은 하지 않았다 한다. 조순애의 친남동생은 작고했으며 여동생들과 이복 남동생은 현재 생존해 있는데 조순애 외에 형제들은 모두 국악을 하지 않았다 한다.
피리 태평소의 대가 조계남과 판소리 명창 조몽실은 조순애의 당숙어른 뻘이며 판소리 명창 박기채는 조순애의 외삼촌, 판소리 명창 조동선과 현재 전라도 삼현육각의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능주의 피리 장고 명인 조도화(조동선의 남동생)는 조순애의 육촌 오빠, 현재 판소리 경기민요 발탈 국극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조영숙(조몽실 딸)은 조순애의 육촌 여동생이라 한다.
예전에 조순애가 살던 능주면과 가까운 이양면에서 박현옥의 모친(성명 미상)이 굿을 아주 잘했다 한다. 그리고 1950년대에 대금 명인 한주환이 5∼6년간 능주면 잠정리에서 연주 활동을 한 바 있다고 한다. 이때 조순애의 외삼촌 박기채, 조순애의 육촌 오빠 조도화 등이 한주환과 어울렸다 한다.
조순애는 12세부터 3년간 능주면 잠정리에서 외삼촌 박기채한테 판소리 심청가와 적벽가 토막소리를 배웠다. 박기채는 당시 40대였다 한다. 이때 조순애와 동갑인 능주 사람 조봉례, 오옥석도 함께 배웠는데 조봉례는 조도화의 여동생이며 오옥석은 조도화의 누나 조모씨의 딸로서 그중 조봉례가 현재 생존해 있다 한다. 조순애는 박기채 문하에서 학습할 때 약 3개월 동안 그 어른을 모시고 남자 학습생 2명과 함께 강진의 어느 산으로 소리공부를 들어갔다 한다. 이때 강진에서 판소리 명창 김채만의 부인이 씻김굿 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굿을 무척 잘했으며 김채만은 당시 작고한 뒤였고 그 부인과 딸이 강진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한다. 박기채는 정응민제 심청가가 특기였는데 방안소리는 잘했으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큰 무대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다. 박기채의 부인은 국악을 하지 않았다 한다.
조순애는 14∼15세 무렵에 친구들과 함께 2개월 가량 능주면 잠정리에서 명무이자 명고수였던 김막동한테 승무를 배웠다. 조순애는 이때 배운 춤을 이제 나이가 들어 거의 못춘다고 한다.
조순애는 16세 때 조봉례, 오옥석과 함께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였다. 당시 조상선 앞에서 입단 시험을 본 후 합격해야 그 단체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조순애, 조봉례, 오옥석은 서울 종로 우미관에서 시험을 보았다 한다. 이때 세 사람 모두 합격하였는데 시험이 끝난 후 조상선이 조순애한테 장래가 유망하다고 칭찬했다 한다.
조순애는 동일창극단에서 21세까지 약 5년간 공연 활동을 하다가, 몇달 동안 집에서 쉬고 다시 그 단체에 들어가 23세까지 있었다. 조순애는 여기에 몸담고 있으면서 판소리 명창 장판개의 아들 장영찬과 함께 조상선한테 소리를 배웠다. 이때 조순애가 익힌 소리는 단가 <적벽부>와 <여객같은>, 판소리 춘향가 중 <비맞은 제비같이>∼<하루 가고>, 창극 논개전의 소향 역과 선화공주의 공주 역 소리 등을 배웠다. 조상선은 정정렬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는데 작곡력이 매우 뛰어났다 한다. 조순애는 조상선이 단가 <백발가>(젊어 청춘)와 열사가를 부르는 것은 못봤으며 이동백한테 배웠다는 말은 못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순애는 동일창극단 활동 당시 조상선 문하에서 <단오노래>, <칠석놀이>, <추석노래>, <널뛰기>, <사철가>와 같은 조상선 작곡의 신민요도 배웠는데 조순애와 같은 조상선의 제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이 민요들이 널리 알려져 자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조순애는 이 신민요들이 지금은 부른지 오래되어 뜨문뜨문 기억난다고 한다. 그리고 조순애는 구음이나 <육자배기>, <자진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흥타령>과 같은 옛 민요는 특별한 스승없이 어려서 많이 들어 자연스레 부를 수 있게 됐고 특이한 사설과 성음은 여러 선생들이 하는 걸 듣고 땄다고 한다.
동일창극단에는 조순애 활동 당시 조상선, 장영찬, 조봉례, 오옥석 외에도 판소리 명창 강남중, 공기남, 정남희, 임소향, 강장원, 정광수, 박초월, 박귀희 같은 이들이 활동했었는데 이때 임소향은 창극 무대에서 춘향모로 유명했다 한다.
조순애는 동일창극단 등 단체 생활에 여념이 없던 6.25 전쟁 발발 무렵 서울 조계사(또는 대각사:불분명함)에서 열린 5명창 추모 합동제사에 참가한 바 있다. 이 제사에서는 스님들이 염불 천도를 해주었으며 추모 공연은 없었고 제사 후 참석자들 전원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졌다 한다. 이때 강장원, 고일연, 김계룡(?, 단체 사무일 담당), 김광식, 김세준(?), 김유난(?, 국악 애호가), 김윤덕, 김재선, 박귀희, 박도화, 박록주, 박석기, 박헌봉, 백점봉, 백모씨(만담가), 성금연, 성순종, 신숙, 심상건(?), 오태석, 이동안, 이정업, 임유앵 임춘앵 자매, 임종선, 정남희, 정득만, 조봉란, 조상선, 조소옥, 지영희, 5명창의 부인들과 친척 자손 등이 참석했으며 송만갑의 아들 송기덕과 송영덕, 송만갑의 조카 송억봉(송업봉?)은 당시 오지 않았다 한다.
이 가운데 고일연은 조순애보다 4∼5세 연상이며 소리는 전혀 못했고 국극 무대에서 단역을 주로 맡았으며 현재 생존해 있다 한다. 김재선은 조순애보다 20세 이상 연상이고 박도화는 조순애보다 3세 가량 연상이며 오래 전에 작고했다 한다. 백점봉은 충청도 사람으로서 조순애보다 20세 이상 연상인데 조순애는 그의 판소리는 못들어봤다 한다. 성순종은 김연수한테 판소리를 배웠고 신숙은 경상도 사람으로서 김소희와 비슷한 연령이며 미인이었고 판소리와 <육자배기>를 잘했으며 1950년대 후반에 작고했다 한다. 신숙은 1940년대 국극 선화공주가 처음 발표될 때 첫번째로 공주 역을 맡았다 한다. 임종선은 조순애보다 20세 가량 연상이며 관악기 악사였다 한다. 조봉란은 전라도 사람이 아니고 그 모친은 이북 사람이라 한다. 조봉란은 조상선 문하에서 소리를 배웠고 조순애보다 5∼6세 연하이며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에 작고했다 한다. 조봉란은 연극 전문인이었지만 소리를 꽤 잘했고 그 후손이 있으나 국악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소옥은 <육자배기>를 잘했고 1960년대에 작고했는데 조순애는 그의 판소리는 못들어봤다 한다.
조순애는 23세 때 동일창극단을 나온 뒤 2∼3년간 집에서 쉬다 조상선, 박록주가 이끌던 국극사에 입단하였다. 그 국극사에서는 20대 후반까지 2년 가량 활동하다가 나와서 새한여성국극단(단장:김경애)에 입단하여 2∼3년간 활동하였다.
새한여성국극단에는 조순애 활동 당시 김순자, 변녹수, 백숙자, 김행, 장난희, 박옥순, 한성숙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한다. 백숙자는 조순애보다 5∼6세 연하로서 소리는 전혀 못했고 연극 전문인이었으며 김행은 조순애보다 5세 가량 연상이며 소리는 약간 했고 역시 연극 전문인이었다 한다. 그리고 장난희는 소리는 전혀 못했으며 연극 진행자였고 국극 공연시 꼽추 역 등을 맡았다 한다. 박옥순은 조순애보다 7∼8세 연하이며 소리는 약간 했고 국극 공연시 사령 등의 단역을 주로 맡았다 한다. 한성숙은 조순애보다 5세 가량 연하로서 소리는 약간 했으며 연극 전문인이었다 한다.
새한여성국극단에서 조순애가 활동할 당시 김진진의 이모 임춘앵이 1940년대 조상선이 작곡한 국극 선화공주의 곡조를 토대로 하여 그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렸으며 이 단체에서는 박동진 작곡의 국극(사씨남정기 등)도 자주 공연했다고 한다. 조순애는 이 당시 찍은 국극 활동 사진을 몇장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창극단 공연시 입은 의상은 사용 후 그때그때 단체에 반납했기 때문에 옛 무대 옷은 지금 소장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
조순애는 새한여성국극단을 나와 집에서 몇달 쉬다가 명창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서 4∼5년 동안 단가 <강상풍월>, 판소리 춘향가 토막소리, 수궁가와 흥보가 전판을 사사했고 <추월강산>과 심청가는 안배웠다 한다.
당시 박초월 문하에 성우춘, 김선초, 조통달, 김경숙 등이 있었고 한성준의 제자 장홍심이 박초월 학원(종로)에서 무용을 가르쳤다 한다. 성우춘은 전주 사람으로서 조순애보다 4∼5세 연상이며 지금 판소리 활동을 하는 성창순, 장영찬의 부인 성희경과 친척간이라 한다. 김선초는 명고수 김세준의 딸로서 1925년 무렵에 출생했으며 판소리,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했는데 지금은 일본에서 살고 있다 한다. 김선초 밑에 김채돈(김차돈)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김채돈은 조순애보다 2∼3세 연상이며 미인이었고 현재는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다 한다. 조순애는 30대 후반에 김선초 김채돈 자매를 보고 그 뒤로는 못보았다 한다. 김선초 김채돈은 판소리 명창 김창룡의 손녀인 셈이며 김창룡의 손자 중에는 김인태가 현재 KBS 탤런트로 활동 중이라 한다. 김선초 김채돈 자매는 예전에 새한여성국극단에서 조순애와 함께 활동한 바 있는 김순자(일명 문재네)와 사촌간이며 김인태와 김모씨(일명 포천댁)는 형제간이라 한다. 김선초, 김채돈, 김순자, 포천댁 김모씨의 후손 가운데 국악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포천댁 김모씨는 조순애보다 3∼4세 연하라 한다.(계속)

2001년1월30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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