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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박록주 흥보가} 음반(지구레코드 JCDS-0435/0436, 1967년 녹음, 2CD, 1994년 재판 제작)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판소리 명창 이옥천 증언<2>
증언/이옥천(박록주 제자)
때/1994.2.3.12:30-15:30
곳/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옥당국악실
대담 및 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박록주 선생님께서 한번은 어떤 거지 한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 후 박록주 선생님이 지방에 볼 일이 있어서 내려가셨다가 기차표가 매진되어 애태우고 있을 때, 마침 박록주 선생님께서 도와주었던 그 거지가 지나가다가 박록주 선생님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고 박록주 선생님의 애태우고 있는 속사정을 들은 그 거지가 어디선가 기차표 한 장을 구해다 준 적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박록주 선생님께서 어느날 내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시며 사람은 겸손할 줄 알아야 하고 누구에게나 잘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여 월사금을 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박록주 선생님은 월사금을 내지 않아도 좋으니 계속 배우라고 하시면서 따뜻한 격려를 해주셨다. 그 때의 고마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박록주 선생님과 김여란 선생님은 가까운 사이였다. 어느날 김여란 선생님께서 박록주 선생님에게 <<옥천이가 언니를 쏙 빼닮았어>>라고 나를 칭찬하셨고, 이에 박록주 선생님께서 <<옥천이는 목 믿고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이 걱정이다>>라고 답하신 적이 있다.
나는 박록주 선생님에게 흥보가를 배울 때 초입부터 <제비 후리러 나가는 데>까지 배웠다. <놀보 박타령>은 여자가 부르기에는 가사가 난잡해서 옛날에는 여류 명창은 배우지도, 부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박록주 선생님께서 김정문 선생님에게 흥보가를 배우실 때도 <놀보 박타령>은 배우지 못하셨고 나도 이 대목은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구레코드에서 1960년대 말에 제작된 박록주 선생님의 흥보가 음반(LM-120180, 3LP)에 <놀보 박타령>이 들어있다니 놀랍다. 아마도 박록주 선생님께서 음반 취입을 위해 직접 짜서 녹음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나는 서라벌예술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20세 때 박록주 선생님 댁에서 정권진 선생님에게 수궁가 초입부터 <약성가>까지 배웠다. 물론 박록주 선생님의 허락이 있었기에 박록주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울 수 있었다. 박록주 선생님께서는 도량이 넓으셔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소리 배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기 보다는 좋은 소리제를 열심히 배우는 것을 권장하고 흐뭇해 하셨다.
나는 25세 무렵부터 7년 동안 박록주 선생님 댁에서 박봉술 선생님에게 적벽가와 수궁가 전바탕을 배웠다. 박록주 선생님과 김길희 선생님이 내게 적벽가를 배워두어야 한다면서 부산에 계시던 박봉술 선생님을 서울로 모셔왔다. 이 때 김길희 선생님께서 재정적으로 많이 후원해 주셨다. 김길희 선생님께서는 일본 동경에서 공부하고 오신 시인이다. 김길희 선생님은 시인이시면서 소리속을 잘 아는 귀명창이신데 여러 명창들과 친분이 두터우셨다. 나이가 자신보다 50세 이상이나 많은 이동백 선생님과도 호형호제 하면서 가깝게 지내셨을 정도였고, 옛부터 박록주 선생님의 소리를 좋아하시어 지금도 박록주 선생님의 녹음을 즐겨 들으신다. 그리고 김길희 선생님은 옛부터 형편이 어려운 명창들을 남모르게 후원하고 계시다.
김득수 선생님께서는 <<박봉술은 예나 지금이나 목이 궂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남자 명창으로는 박봉술 선생님께서 당대 최고의 명창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꺾인 목을 가지고 기발한 소릿길을 구사하시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명환 선생님도 <<박봉술은 젊어서 목이 좋았으며 목이 꺾인 후에도 공력 만큼은 대단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박봉술 선생님께서 약주를 퍽 좋아하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는 박봉술 선생님께서 약주하신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박록주 선생님 댁 방에서 박봉술 선생님과 마주앉아서 박봉술 선생님께서 부르시는 것을 따라 불러서 배웠다.
나는 28세 무렵에 함동정월 선생님에게 가야금산조 전바탕을 배웠고, 30세 때 정광수 선생님에게 적벽가 중 <삼고초려>(이동백제)를 배웠다.
내가 부르는 판소리 중에서 춘향가의 대부분은 박록주 선생님의 소리제이고 춘향가 앞대목은 대체로 김향란 선생님의 소리제로 되어 있다. 흥보가는 모두 박록주 선생님의 소리제이다. 심청가는 대체로 김향란 선생님의 소리제인데 정권진 선생님과 김소희 선생님의 소리제가 군데군데 섞여있다. 적벽가와 수궁가는 대체로 박봉술 선생님의 소리제인데, 적벽가 중 <삼고초려>에는 정광수 선생님의 소리제를 가미했고 수궁가 중 초입∼<약성가>에는 정권진 선생님의 소리제를 가미했다. 이 가운데 나는 박록주 선생님에게 배운 춘향가와 흥보가를, 박봉술 선생님에게 배운 적벽가를 가장 즐겨 부른다.
기억에 남는 나의 공연 무대는 27세 때 있었던 [1972년 문화재관리국 주최 제2회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 평가 발표회]이다. 이 때 나는 박록주 선생님의 제자로 참가해서 김연수 선생님의 제자로 나오신 오정숙 선생님 다음으로 2위를 하여 크게 기뻐했다.
나는 요즘 옥당국악실에서 여러 제자들에게 박록주 선생님의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한정민, 사성원, 이선, 김용숙이 내가 길러낸 소리꾼이다. 이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내게 박록주 선생님의 소리제를 배우고 있다.
1969년 10월 15일, 명동 국립극장에서 당시 65세인 박록주 선생님의 은퇴 공연이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이 날 무대에서 박록주 선생님께서 특기인 단가 <백발가>를 부르셨다. 박록주 선생님께서 <백발가>를 부르시다가 눈물을 흘리시며 목이 메인 소리를 하셨다. 객석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 은퇴 공연은 부산, 대구, 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부산 공연 때, 나는 너무 긴장하여 박록주 선생님께서 가장 정성껏 가르쳐 주신 더늠 가운데 하나인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부르다가 송구스럽게도 같은 사설을 되풀이 해서 부르는 실수를 했다.
인간문화재였던 박록주 선생님은 평소에 인간문화재 제도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는데 타계하시기 직전에는 인간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셨다. 그래서 박록주 선생님은 타계하시기 1년 전부터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의 집으로 세 번 찾아오셨다. 나는 그 때마다 집에 없었고 인간문화재 후계자 지정에 관한 문제는 차일피 미루다가 박록주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 박록주 선생님께서 미흡한 나를 박록주 선생님의 인간문화재 후계자로 지목하는 서류를 만들어서 문화재관리국에 보내려고 하셨던 것이다.
1978년에 박록주 선생님의 고향인 선산에서 박록주 선생님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다. 이 때도 박록주 선생님께서는 단가 <백발가>를 부르셨다. 이 때는 <백발가>가 더욱 구슬프게 들렸다. 박록주 선생님께서 선산 공연을 마친 후 어떤 분의 자가용을 타고 서울로 오시는데 <<늙으면 죽어야 한다>>라고 자신의 쇠약해지는 몸을 한탄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말씀이 있은 잠시 후에 장대비가 쏟아지게 되자 박록주 선생님께서 운전하시는 분에게 <<천천히 갑시다>>라고 말씀하셔서 차 안에 함께 탔던 분들이 모두 웃은 적이 있다.
자손이 없으셔서 제자들을 늘 친자식처럼 여기시며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박록주 선생님, 밥을 먹으면 소리가 안나온다고 하시면서 식사도 안하신 채 무대에 올라가시어 열창을 하시던 박록주 선생님,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말씀하셨다가 잠시 후에 자신을 태우고 있는 차가 폭우 속을 질주하게 되자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염려되어 <<천천히 갑시다>>라고 하시어 웃음이 나오게 하셨던 박록주 선생님, 몸은 늘 편치 않으셨지만 왠지 옆에 늘 계실 것만 같았던 박록주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선생님께서 타계하신지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은퇴 공연 때 <<백발이 섧고 섧다∼>> 하시며 눈물 섞인 <백발가>를 부르시던 박록주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요즘은 나도 <백발가>를 부르면 눈물이 흐른다.
철없는 나이에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울 때는 몰랐던 것을 나는 요즘 제자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깨닫는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가 하는 것을.(끝)
2001년1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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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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