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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이옥천 증언<1>
* 이 글은 {박록주 흥보가} 음반(지구레코드 JCDS-0435/0436, 1967년 녹음, 2CD, 1994년 재판 제작)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판소리 명창 이옥천 증언<1>

증언/이옥천(박록주 제자)
때/1994.2.3.12:30-15:30
곳/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옥당국악실
대담 및 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나 이옥천(玉堂 李玉千)은 아버지 이선이, 어머니 김순덕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1946년 3월 9일 경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께서는 어릴 때부터 국악을 좋아하셨고 직접 배우고 싶었지만 국악은 기생의 음악이라는 그릇된 사회 풍조 때문에 국악을 배우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딸인 나라도 국악을 했으면 하셨다. 국악인이 되고자 했던 어머니의 꿈을 나에게 심어주셨던 것이다. 나는 9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한 동네에 살고 계시던 판소리 명창 김향란 선생님 댁으로 갔다.
그래서 나의 국악 인생은 시작되었고 김향란(金香蘭) 선생님이 나의 첫 스승이 되었다. 김향란 선생님은 송만갑 선생님과 정정렬 선생님에게 판소리를 배운 분으로서 대구권번 출신이다. 내가 9세 때 김향란 선생님은 이미 60세를 넘긴 할머니였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다. 나는 포항국민학교에 다니던 9세부터 포항여중에 다니던 16세까지 김향란 선생님에게 단가 <강상풍월>과 <남원산성>을 배웠고 춘향가(정정렬제) 중에서는 처음부터 <사랑가>까지 배웠고 심청가는 거의 전바탕을 배웠다.
나는 김향란 선생님에게 배우는 동시에 엄벽파 선생님(어려서는 사투리 때문에 엄백파 선생님이라고 했음)에게 춘향가 몇 대목과 가야금병창, 가야금 풍류를 배웠다. 엄벽파 선생님은 정정렬 선생님에게 판소리를 배운 분으로서 내가 9세 때 약 50세 정도되어 보였고 서울 말을 쓰셨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김향란 선생님과 엄벽파 선생님의 문하를 떠나 서울국악예술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학교에서 박록주, 정권진, 김소희, 박초월, 성금연, 박귀희 선생님에게 국악을 배웠다.
박록주 선생님께서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1주일에 2번 판소리를 강의하셨는데 나의 전공 과목이 판소리였으므로 1학년 때부터 박록주 선생님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정권진 선생님께서는 박록주 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국악예술학교에서 강의하시게 되었는데, 나는 서울국악예술학교 고등과 2,3학년 학교 수업시간에 정권진 선생님에게 심청가 중 상여 나간 후부터 <젖 빌러 나가는 데>까지 배웠다. 김소희 선생님께서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판소리 전공반을 맡아 강의하셨는데 1주일에 4번 정도 강의하러 나오셔서 심청가를 가르쳐 주셨다. 박초월 선생님께서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민요반을 맡아 강의하셨는데 1주일에 2번 정도 강의하러 나오셨다. 성금연 선생님께서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가야금산조를 강의하셨는데 나는 부전공으로 가야금산조를 택했기 때문에 성금연 선생님에게 짧은 가야금산조 전바탕을 배웠다. 박귀희 선생님께서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가야금병창을 강의하셨는데 나는 1학년 때 박귀희 선생님에게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어느날, 수업이 끝난 후 박록주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너 내 집에 정식으로 소리 공부하러 오거라>>하고 말씀하셨다. 그 후 나는 서울국악예술학교 고등과 판소리 수업 중에 박록주 선생님의 눈에 띄어, 대명창이신 박록주 선생님의 소리제를 정식으로 배우게 되었다.
박록주 선생님 댁과 정악원에서 박록주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웠다. 당시 박록주 선생님은 몸이 몹시 편찮으셨다. 박록주 선생님과 마주보고 앉아 선생님께서 부르시면 내가 따라 불러서 배웠다. 가르치시면서 때리신 적은 없었다. 박록주 선생님은 당시 심한 경제고에 시달리시어 셋방을 전전하셨다. 박록주 선생님의 셋방에서 판소리를 배울 때면 주인집과 이웃집에서 항의가 들어오기가 일쑤였고, 그런 까닭에 한여름에도 선생님과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소리 수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박록주 선생님 댁에서 옆방, 옆집 눈치보며 공부해서는 몇 일에 한 번씩 선생님 모시고 정악원에 가서 목청이 터져라 배웠던 것을 복습했다.
박록주 선생님은 <백발가>, <진국명산>, <운담풍경>, <초한가>, <적벽부> 등의 단가와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 숙영낭자전를 모두 잘 부르셨는데, 적벽가와 수궁가는 토막소리만 부를 줄 아셨다. 이 가운데 박록주 선생님은 단가 <백발가>, 춘향가, 흥보가를 즐겨 부르셨다.
나는 17세 때부터 12년 동안 박록주 선생님에게 단가 <백발가>, <진국명산>, <운담풍경>, <초한가>, <적벽부>, 춘향가와 흥보가 전바탕, 심청가 중 <심청이 밥 빌러 나가는 데>를 배웠다. 춘향가와 흥보가는 박록주 선생님 댁에서 가르쳐 주셨고 심청가 중 <심청이 밥 빌러 나가는 데>는 서울국악예술학교 고등과 수업시간에 가르쳐 주셨다. 박록주 선생님이 정정렬 선생님에게 배우셨다는 숙영낭자전과 박기홍 선생님에게 배우셨다는 단가 <대관강산>은 배운 바 없다.
내가 박록주 선생님 댁에 처음 판소리를 배우러 갔을 때 정성숙씨, 백순기씨가 이미 박록주 선생님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먼저 박록주 선생님에게 판소리를 배운 정성숙씨는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위였고 함경도에서 태어났는데 현재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박록주 선생님의 제자 가운데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배운 사람은 나와 정성숙씨 뿐이다. 백순기씨는 나와 예술학교 동창으로서 박록주 선생님에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판소리를 배웠다.
김소희 선생님, 박귀희 선생님, 박초선씨, 성우향씨, 성창순씨, 한농선씨는 내가 박록주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 박록주 선생님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박송희씨는 내가 박록주 선생님의 문하를 떠나서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러 갈 즈음에 박록주 선생님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박록주 선생님은 자신의 스승에 대한 말씀은 별로 없으셨다. 어려서 박기홍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고, 젊어서 정정렬 선생님에게 춘향가를 배우다가 창극 춘향전에서 춘향이 역으로 공연할 당시에 송만갑 선생님에게도 춘향가를 배웠다고 하셨으며, 흥보가를 전바탕 배워놓아야 겠다고 생각하여 김정문 선생님께 찾아가시어 배웠다고 말씀하셨다.
박록주 선생님은 정정렬 선생님과 송만갑 선생님에게 춘향가를 배우셨기 때문에 박록주 선생님의 춘향가는 정정렬 선생님과 송만갑 선생님의 소리제가 섞여있는데 <천자뒷풀이>, <자진사랑가>, <이별가 뒷부분>, <십장가>가 송만갑 선생님의 소리제라고 말씀하셨다.
박록주 선생님의 소리는 통이 크고 박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드럽기 보다는 꿋꿋하며, 맺고 끊음이 무섭다. 마치 남자 같이 소리를 하셨다. 당시 나는 박록주 선생님의 성격이 매우 직선적이고 남성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록주 선생님은 자가용 타고 드라이브 하는 것과 코스모스를 보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남성적인 판소리를 하셨던 것과는 상대적으로 소녀처럼 순수하시고 낭만적인 성품도 지닌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말씀이 별로 없으셨고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어려운 이들이 눈에 띄면 선생님 자신도 형편이 어려운 처지이면서도 망설임 없이 도와주시는 분이었다. 함동정월 선생님, 정권진 선생님도 박록주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은 분들이다.(계속)

2001년1월22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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