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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96년에 제작된 {부부 국악인 지영희 성금연} 음반(국악기록보존연구소 명인기획/지구레코드 1CD)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해금,피리,태평소 명인 지영희<1>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지영희(池瑛熙, 본명:池千萬)는 1909년 8월 14일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내기리에서 경기 세습무 지용득(池龍得) 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항련에게 호적을, 정태신에게 양금을, 지용구에게 해금을, 양경원에게 피리를, 김계선에게 대금풍류를, 방용현에게 대금산조와 풍류를, 최군선에게 농악을, 오덕환에게 무용 장고를, 박춘재에게 경기소리와 서도소리를, 신쾌동에게 거문고산조를, 김상기에게 거문고풍류를 배웠다.
지영희는 가야금과 아쟁은 자득했고 해금산조, 피리산조 연주자로 유명하다. 그리고 지영희는 일제 때 한성준 무용 연구소와 최승희 무용단에 반주 악사로 있으면서 무용곡을 편곡하였고, 그때 승무 등 무용을 익혀 춤도 잘 추었다 한다. 또 <청하지곡>(淸河之曲), <휘모리곡> 등을 작곡, 편곡하여 발표한 바 있다.
지영희는 태평소로 행세를 안해서 그렇지 태평소로도 대명인이었다. 지영희는 어려서 태평소 명수로 이름이 나서 평택 이웃 마을에까지 많이 불려 다녔다 한다. 당시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두레패들이 지영희를 농악대 호적수로 내세우려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하며 호적수로 영입하는 데 성공한 농악대에서는 지영희의 집 농사 일까지 거들어주는 선심을 썼다 한다. 그리고 걸립패의 태평소 연주자로도 초빙되어 활동했다 한다.(1991.12.15. KBS-1FM 국악의 향연 [내가 만난 국악인] 특집 방송에서 이보형 증언) 지영희는 <취타>, <염불>, <굿거리>, <타령>, <능게>, <네나리>와 같은 곡을 태평소로 즐겨 연주한 바 있다.
지영희는 1945년에 국악원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53년에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대한국악원의 이사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에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했고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지영희는 1960년대에 박정희의 미신 타파 정책이 발표되자 굿이 소멸될 것을 염려하여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무속음악을 채보하였다. 그리고 국악인으로는 드물게 민속악을 5선 악보로 채보하여 정리했으며, 창작 국악을 관현악으로 편곡하고 관현악단 지휘도 했다.(계속)
2000년12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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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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