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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성금연<2>
* 이 글은 1996년에 제작된 [인간문화재 성금연 선생 추모 음반-눈물이 진주라면, 철가야금 연주:지성자] 음반(성금연 가락 보존회/국악기록보존연구소 명인기획 NCM-96062, 1CD)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가야금 명인 성금연<2>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다음은 지금까지 확인된 성금연의 공연 활동 연보이다. 아래 공연 연보는 대부분 이보형 문화재전문위원이 소장하고 있는 공연 안내 인쇄물을 근거로 정리되었다. 여기 정리된 것은 성금연의 공연 활동 중 극히 일부분이다. 그러나 미흡하게 정리된 이 연보만으로도 성금연이 1939년부터 1986년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가야금의 대명사로서 눈부시게 활동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 1939년 5월 조선일보사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조선소리 경창대회에 성금연이 출연하여 공연함
*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성금연의 공연 활동은 남아있는 문헌 자료가 미흡하여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성금연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이기 때문에 거의 매년 상당히 많이 공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967년 6월 12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시립국악관현악단 제10회 정기 공연에 성금연과 그의 제자들이 출연하여 가야금산조와 병창 등을 연주함
* 1967년 10월 2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성금연 가야금 독주회
* 1968년 4월 11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시립국악관현악단 제12회 정기 공연에 성금연과 그의 제자들이 출연하여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연주함
* 1969년 10월 11,12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박귀희 예술 생활 30년 기념 공연에 성금연과 그의 제자들이 참가하여 무용음악 등을 담당함
* 1969년 10월 20일 문화공보부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제6회 중요무형문화재 발표 공연에 성금연이 출연하여 가야금산조를 연주함
* 1971년 6월 7,8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한영숙 무용 발표회에 성금연이 남편 지영희와 함께 참가하여 무용음악을 담당함
* 1974년 4월 30일 서울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제1회 선소리 산타령 경기 12잡가 발표회에 성금연이 남편 지영희와 참가하여 반주를 담당함
* 1984년 2월 27,28일 서울 공간사랑에서 성금연 연주회
* 1986년 5월 29일, 6월 1∼4일 일본에서 성금연 가야금세계 공연

성금연은 킹스타레코드, 오아시스레코드, 지구레코드, 아세아레코드, 서라벌레코드, 성음 등 여러 음반회사에서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봉장취, 시나위 합주 등을 녹음하여 여러 장의 음반을 냈다. 성금연의 가야금산조가 담긴 음반은 지금까지 모두 15장이 확인되었는데, 성금연의 가야금산조 음반 중에 가장 명반으로 평가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960년 무렵 킹스타레코드 제작 성금연 가야금산조(KSM-1085)
1960년대 중반 ABC레코드 제작 성금연 가야금산조(RL-10006)
1966년 무렵 지구레코드 제작 무용곡으로 된 가야금산조와 병주(LM-120133)
1976년 오아시스레코드 제작 성금연 가야금산조(OL-1777)
1978년 서라벌레코드 제작 성금연 가야금산조(SAM-6008)
1984년 성음 제작 성금연 가야금산조(RS-145)
1986년 일본 빅타 성금연 가야금산조(JVC-VICG-5018)(이 음반에는 성금연의 산조와 지성자의 향수, 새타령 연주가 담겨있으며 장고 반주는 모녀가 교대로 맡았다. 이 음반이 국내에 라이선스로 제작될 때 음반 표지에 지성자가 모든 가야금 연주를 녹음했고 성금연은 장고만 반주한 것으로 잘못 명시되었다.)

성금연의 가야금산조 음반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고 [가야금산조 음반에 대하여]{한국음반학 제4호}(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1994)에 자세하게 실려있다.
음반으로 공개된 성금연의 가야금산조 녹음 외에도 방송국, 문화재관리국,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성금연의 가야금산조 녹음이 많이 남아있다.
성금연의 가야금산조는 광복 후의 가야금산조 가운데 함동정월, 김죽파의 가야금산조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가야금산조로 꼽힌다. 성금연의 가야금산조는 흔히 박상근류로 알려져 있으나, 음반과 공연 프로그램에 박상근류라고 되어 있으면 성금연이 화를 벌컥 냈다 한다.
성금연은 안기옥을 비롯해서 최막동, 조명수 등 여러 명인들에게 산조를 배웠고 판소리 등 여러 민속악을 두루 익혔다. 그리하여 성금연은 안기옥의 산조를 기둥으로 삼고 거기에 다른 여러 명인들의 가락과 자신의 작곡을 가미하여 독특한 가야금산조를 완성하였다. 그래서 성금연 자신은 박상근류 산조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지성자의 말에 의하면 성금연이 자신의 산조 가운데 박상근류로 인정한 부분은 중중모리 가락이라고 한다.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초반에 나온 음반을 보아도 그렇고 당시 방송 기록을 보아도 그렇고, 당시 학교의 가야금산조 교육도 그렇고 성금연의 가야금산조가 천하를 지배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다가 1974년에 성금연은 하와이로 떠났고 이제 그의 예술도 점점 옛 추억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때 성금연의 독창적인 창작곡들이 이렇게 그의 딸 지성자에 의해 또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니 매우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끝)

2000년12월8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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