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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96년에 제작된 [인간문화재 성금연 선생 추모 음반-눈물이 진주라면, 철가야금 연주:지성자] 음반(성금연 가락 보존회/국악기록보존연구소 명인기획 NCM-96062, 1CD)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가야금 명인 성금연<1>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성금연(成錦鳶, 본명:成六男)은 1923년 4월 10일 전남 광주에서 부친 성기봉(成基奉)과 모친 이복덕(李卜德) 사이 3남 8녀 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다. 성금연의 형제 가운데 성금화라는 언니가 있으며 네째 언니는 성국화, 다섯째 언니는 성순례(하와이 거주), 여동생 이름은 차례로 성칠남(예명:성금주), 성팔례(서울 거주)이고 남동생 이름은 차례로 성장수, 성재국, 성문호이다. 성금연의 형제 가운데 성금화, 성순례, 성칠남이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한 바 있는데 특히 성금화는 일제 때 오케이 음반회사에서 가야금병창 음반을 취입한 바 있다.
성금연은 최막동에게 가야금풍류와 산조를, 조명수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안기옥과 박상근에게 가야금산조를, 정정렬 등 여러 명창에게 판소리를, 신쾌동에게 거문고산조를 배웠고 아쟁, 해금, 단소는 자득했다. 아쟁은 가야금처럼 줄을 손으로 뜯어서 연주하기도 했다.
성금연은 1958년에 해금, 피리, 태평소의 명인 지영희와 혼인하였다. 그후 두 명인은 서로의 음악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민속악의 발전을 위해 함께 힘썼다.
성금연, 지영희 부부는 신쾌동, 김광식, 이충선, 지갑성과 함께 많이 연주, 방송, 공연하였고 음반 취입도 여러번 하였다. 김광식이 작고한 후로는 한범수가, 지갑성이 작고한 후로는 이정업이 그 빈자리를 메워 함께 활동하였다.
성금연은 1950년대부터 가야금산조의 대명사처럼 군림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고 1968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성금연은 가야금산조와 병창 외에도 <흥>, <비가 오네>, <탄금대의 애화>, <법성계>, <우륵의 노래>, <춘몽>, <새가락 별곡>, <향수>, <눈물이 진주라면>과 같은 가야금 창작곡을 지어 연주하기도 했고 수없이 많은 무용 반주곡을 작곡, 편곡하였다.
<흥>은 농악 장단을 사용하여 생동감을 부여한 곡으로서, 팔도 가락이 모두 들어있는 비빔밥과 같은 곡이다. 성금연은 <흥>이라는 작품에 아기를 안고 어루며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성금연의 창작곡 가운데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가진 곡이 있다. <비가 오네>라는 곡인데, 성금연이 연주하고 나면 비가 내려서 나중에는 연주를 삼가하였다 한다. 어느 TV방송 제목처럼 믿거나 말거나지만 성금연이 <비가 오네>를 연주하면 정말 신기하게도 비가 왔다 한다.
성금연의 창작곡 가운데 <새가락 별곡>은 전라도 어정제로 작곡되었으며 <향수>는 메나리조로 작곡되었다.
<눈물이 진주라면>은 진계면조로 작곡되었으며 남도민요 <육자배기> 맛이 난다. 성금연은 <눈물이 진주라면>을 짓고 나서 그 곡을 직접 연주하여 녹음을 하였는데, 그 녹음 테입을 딸들에게 선물이라며 주었다 한다. 그 녹음 테입에 성금연은 이런 말을 넣어놓았다. {눈물이 진주라면 모아 놓았다가 너희들한테 나눠 줄 수가 있겠지만, 흘린 눈물은 자국도 없어지며 남길 것이 없어 가야금에다가 옮겨보니, 줄 것을 가야금 소리로 주는 것이다. 그러니 잘 들어보아라.} <눈물이 진주라면>은 성금연이 무대나 방송, 음반 등으로 발표하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고 딸들에게 마음의 선물로 준 것이다. 그런데 성금연의 딸 지성자가 그 곡을 들어보니 가락이 너무 좋아서, 그 녹음 테입에 담겨있는 성금연의 첫 육성인 {눈물이 진주라면}이란 말을 곡명으로 붙여서 나중에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한다.
성금연은 무용 반주곡도 많이 작곡, 편곡하였다. 무용 반주곡 중에는 우리나라 팔도 가락뿐 아니라 중국음악까지도 편곡하여 무용 반주를 하였다.
성금연은 창작곡과 무용곡 등 다양한 음악을 보다 효과적으로 연주하기 위해 고음역에 줄이 부가된 15현 가야금과 철가야금을 특수 제작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가야금이 관악기와 합주할 경우 12현으로는 맛을 살리기가 어렵고 그래서 보다 다양한 음을 자유롭게 낼 수 있도록 15현을 개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음을 보다 길게 남기고 그 미세한 음들에 의해 감정처리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철가야금을 개발했다. 그리하여 성금연은 매우 독창적이고 차원높은 가야금 세계를 구축했다. 본 음반에 담긴 작품은 모두 15현 가야금을 위한 성금연의 창작곡들이다. 본 음반 취입에 사용된 악기는 14현 철가야금인데, 14현 철가야금은 15현으로 작곡된 작품을 연주할 때 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성금연은 KBS 국악생 강사와 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성금연의 딸 지수복, 지성자, 지미자, 지순자, 지윤자를 비롯해서 권혁태, 황병주, 이영희, 이재숙, 김정자, 강정렬, 문일지 등이 성금연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성금연은 1974년에 남편 지영희와 함께 하와이로 가서 살았다. 그 후 1980년에 지영희는 세상을 떠났고 홀로 된 성금연은 고국을 떠난지 10년만인 1984년에 일시 귀국하여 연주회를 가진 바 있다. 1986년 2월 19일 성금연은 일본 빅타 음반회사에서 딸 지성자와 함께 가야금 연주집을 취입하고 나서 5개월 후인 1986년 7월 29일 하와이에서 작고하였다.(계속)
2000년12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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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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