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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박초월
* 이 글은 1999년 한국방송공사(KBS)에서 기획,제작하고 신나라레코드에서 제조,발매한 작고명인집-박초월 수궁가 음반(NSC-020/021, 2CD)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판소리 명창 박초월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박초월(본명:박삼순)은 1916년 전남 승주군에서 태어나 남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28년 동편제의 거장 김정문 문하에서 판소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후 송만갑, 박중근, 박동실, 오수암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김소희 증언)
박초월의 학습 과정은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데 박초월과 그의 스승이라고 알려진 명창들 모두 녹음을 남겼기 때문에 이들의 소리 비교를 통해서 박초월의 판소리 학습 내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여 필자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박초월은 춘향가와 흥보가 대부분을 김정문에게 배운 것 같고 심청가는 대부분 박동실에게 배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초월의 수궁가는 대부분 정광수에게 배운 유성준제이다. 박초월이 송만갑 문하에서 사사한 것은 판소리 다섯바탕의 몇가지 주요 대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박중근에게 익힌 것은 춘향가와 수궁가 토막소리였을 것으로 보이고 오수암한테는 흥보가 토막소리를 배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박초월은 김정문에게 배운 송만갑제 흥보가와 정광수에게 배운 유성준제 수궁가는 전판을 했고 그 외에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는 토막소리만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박초월의 흥보가와 수궁가 완창 속에는 각각 오수암과 박중근 등의 소리제도 섞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초월이 장기로 부르던 소리는 단가 <강상풍월>, <운담풍경>, <진국명산>, <홍문연>, <예의동방>, <고왕금래>, <추월강산>, 춘향가 중 <이별가>, <옥중가>, 심청가 중 <망사대를 찾아가서>,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 <새타령>, 수궁가 중 <용왕 탄식>, <녹수청산>, <토끼 배 가르는 데>, 흥보가 중 <가난타령>이다.
박초월은 판소리뿐 아니라 남도민요 <육자배기>, <새타령>, <흥타령>, <진도아리랑> 등을 잘 불렀고 구음은 당대 독보였다. 구음은 누구에게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요, 즉흥적으로 불러야 하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멋이 있어야 하고 공력이 받쳐 줘야 한다. 박초월은 그런 면에서 구음을 잘 부르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명창이라 생각된다.
박초월은 1950∼60년대에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남도민요, 구음을 주로 불렀다. 그러던 그가 수궁가 명창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한 것은 문화재관리국에서 그를 춘향가에서 수궁가 보유자로 변경 지정한 1974년부터다. 광복 후 박초월이 정광수에게 수궁가를 배운 것으로 보아, 박초월이 유성준 문하에 있을 때 아마 전바탕은 못배우고 토막소리만 학습했던 것 같다. 1950년대 후반에 박초월은 수궁가가 특기인 임방울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때 박초월이 임방울과 교류하면서 직접, 간접적으로 임방울제 수궁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박초월은 1955년에 한국민속예술학원(속칭 박초월 국악원)을 설립하여 많은 국악인을 길러냈다. 이 학원에는 한성준의 제자 장홍심이 무용 선생으로 있었는데 이 학원에서 판소리를 배우던 사람들이 장홍심에게 승무, 살풀이, 삼고무 등의 무용을 배웠다. 당시 박초월은 자식이 없어 조카인 조통달을 아들삼아 키웠고 고아들을 많이 데려다 키웠다 한다.(장홍심 증언)
박초월은 1956년 12월 25일 KY라디오 방송에서 성서의 내용을 판소리로 부른 바 있는데 <성탄 송가>(이보라 가사)가 바로 그것이다. 1960년 무렵에는 제1회 박초월 문하생 발표회가 있었는데 성우향, 한농선, 박봉선, 조통달, 김화자 등 박초월의 수제자 8명이 발표를 했다. 이때 임방울, 김연수, 지영희, 성금연, 김광식 등 유명 국악인들이 찬조 출연했고 이정업이 고수로 참여했다.
박초월은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거물급 명창인데다 인정많고 후덕하여 많은 제자들이 따랐다. 성우향, 한농선, 최승희, 조통달, 남해성, 최난수, 박봉선, 성우춘, 나경자, 김옥주, 조순애, 박동순, 김화자, 김선초, 김춘시, 지수복, 김수연, 전정민, 이일주, 박계향, 조소녀, 김경숙, 이선규, 김명곤, 박진섭 등 수많은 이들이 박초월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이 가운데 조통달과 남해성이 1980년대에 박초월제 수궁가 보유자 후보로 인정받았다.
김수연은 자신의 스승 박초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이리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서울에 가서 소리를 배우고 싶다 했더니 박초월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워보라 했다. 나는 당시 형편이 무척 어려웠는데 그때 이리에 소문이 나기를 박초월 선생님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후덕하게 대해준다는 것이었다. 1969년에 나는 거의 모험을 하다시피 서울로 상경했는데 역시 소문대로 박초월 선생님이 잘 대해주셨다.}(김수연 증언)
박초월은 1933년에 전주에서 열린 명창대회에서 1등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1934년에 폴리도르음반회사(Polydor)에서 음반을 내기 위해 명창 이선유와 함께 일본에 녹음을 하러 간 일이 있다. 이 사실을 입증하듯 당시 취입한 음반 중에는 한장의 음반에 박초월과 이선유의 녹음이 각각 한면씩 수록된 음반이 있다. 이때 박초월은 송만갑제 흥보가 중 <박타령>, 남도민요 <육자배기> 등을 녹음했다.
박초월은 광복 후에 킹스타레코드와 신세기레코드에서 여러 장의 유성기음반과 장시간음반에 판소리, 창극, 남도민요를 취입했다. 그리고 그 뒤에 지구레코드, 대도레코드, 아세아레코드, 오아시스레코드 등 여러 음반회사에서 판소리, 창극, 남도민요 음반을 냈다. 그 가운데 1959년 무렵에 킹스타레코드에서 녹음한 <망사대를 찾아가서> 음반과 <구음 살풀이> 음반, 1960년 무렵 대도레코드에서 녹음한 창극 춘향전 음반, 1968년 지구레코드에서 녹음한 창극 춘향전 음반, 1975년 무렵 문화재관리국에서 녹음한 수궁가, 1976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녹음한 춘향가 음반, 1979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녹음한 수궁가 음반, 그리고 1985년 제작된 국악보급진흥회의 [한국의 전통음악] 전집 제32∼33집(2MC)에 들어있는 박초월 흥보가가 걸작으로 평가된다.
박초월의 옛 음반을 들어보면 그는 다른 사람보다 청이 훨씬 높다. 이에 대해 박초월의 문하에 있었던 성우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50∼60년대에는 청이 대체로 높았고 특히 박초월 선생님의 청이 높았다. 그때 소리하는 사람들은 굶주리던 시대인데도 지칠 줄 모르고 고음으로 질러댔다. 요즘은 굶주리며 소리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예전 만큼 고음을 잘 질러내질 못한다. 공력 부족이다.}(성우향 증언)
박초월은 애원성이 가미된 고운 목을 지녀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소리를 구사한다. 그러면서도 남자 명창들에게 소리를 배워서 꿋꿋한 면도 지녔다. 박초월이 전성기 때 녹음한 <옥중가>를 들어보면 상성으로 쏟아내는 귀곡성에서 남자 명창 못지 않은 통성을 들려주고 있는데 어느 귀명창의 말대로 <<대통 속에서 나오는 된소리>>이다.
박초월은 만년에 수궁가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으나 그의 특기는 역시 춘향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창극 춘향전에서 월매 역을 특히 잘하여 월매 역으로는 판막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다. 박초월은 어린 시절을 남원에서 보내 남원 사투리를 쓰는데다가 애원성이 있어서 월매 역에 적절했던 것 같다. 박초월은 1968년 월남 공연을 다녀온 후 당뇨병에 걸려 오랜 동안 병고에 시달리다 1983년에 작고하였다.

2000년12월5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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