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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최승희 증언<2>
* 이 글은 '김여란 춘향가' 음반(국악기록보존연구 명인기획/지구레코드 1CD) 해설서에 실린 "나의 스승, 국창 김여란 선생님"이라는 최승희 명창의 증언내용을 옮겨 놓은 것이다.

판소리 명창 최승희 증언<2>
증언/최승희(김여란 제자)
증언 일시/1995.2.17.10:00∼15:00
증언 장소/전북 전주시 덕진동 2가 184-2, 전북도립국악원,
판소리 3반
대담 및 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1981년, 김명환 선생님의 예술을 아끼는 이들이 일산회(一山會)를 결성하였는데, 이 일산회에는 이보형, 백대웅, 문재숙, 김해숙, 장종민, 정회천, 김정수, 이은자, 김일륜, 박종권 씨 등이 참석하였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내가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자 일산회 회원들이 1982년 무렵에 나를 크게 도와준 적이 있다. 내가 1980년에 김명환 선생님의 북반주로 녹음했던 춘향가를 일산회 회원들이 카세트테입(지구레코드사에서 제작)으로 만들어 주었고 무척 비싼 가격을 주고 모두 사갔다. 일산회는 현재 없어졌는데 당시 일산회 회원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그때 제작한 카세트테입은 후에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작년(1994년)에 100세트 한정판으로 다시 자비 출반(에버그린 음반회사에서 제작)하여 제자들의 교재로 쓰고 있다. 그리고 판매용으로 제작된 내 음반으로는 1990년에 한국브리태니커회사에서 발매한 춘향가 음반이 있다.
나는 1979년 10월 21일에 한국국악협회 주최로 열린 서울 판소리경연대회에서 장원하였고, 1980년 5월 22일에는 남원 춘향제 판소리 부문에서 장원하였으며, 1981년 6월 8일에는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에서 장원하였다. 1982년 10월에 일본 동경, 나고야 초청 순회 공연을 가졌고, 1984년 4월 27일에는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춘향가 완창 공연을 하였다. 그리고 1985년 4월 27일에는 동아일보 주최 서울 국립중앙극장 초청으로 춘향가 완창 공연을 하였다.
1985년, 전북 부안국악원 강사로 있다가 같은 해에 전주 우석대 국악과 강사로 가서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그리고 1989년 이후에는 전주도립국악원 판소리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북대 국악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판소리에는 우조, 계면조, 경조, 호령조가 있는데 우조는 강직하게 들고 가는 소리이고 계면조는 슬픈 곡조이며 경드름은 춘향가 중 <이별가>에서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하는 소리이며 호령조는 춘향가 중 <십장가>에 있다. 또 목성음에는 철성, 양성, 수리성이 있는데 철성은 쨍쨍하고 강철같은 목소리이며 양성은 상청이 잘 나고 깨끗하고 호짓게 나오는 목소리이며 수리성은 탁하고 근성있는 목소리인데 소리꾼은 수리성을 지녀서 소리를 하면 좋다고들 말한다. 정정렬 선생님의 성음이 수리성이다. 소리목에는 방울목, 고자목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방울목은 둥그렇게 떠내는 목이며 고자목은 목구성 없이 땍땍 나오는 목으로서 소리하기에 안좋은 목이다.
김여란 선생님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정정렬 선생님을 모시고 강원도 금강산에 들어가 약 3년 동안,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약 1년 동안 판소리 공부를 하였다” 한다. 그리고 “이기권 씨가 정정렬 선생님에게 공부한 바 있다” 한다. 김여란 선생님이 “정정렬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춘향가, 심청가, 숙영낭자전이었고 단가 <적벽부> 등이었다” 한다. 나는 김여란 선생님이 흥보가 어느 대목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으나 누구 바디인지는 말씀이 없었다.
김여란 선생님은 젊어서 부민관, 동양극장 공연을 비롯하여 일본 순회 공연을 하신 바 있다 한다. 김여란 선생님은 품행이 바르고 미인인데다 소리를 잘하셔서 명월관 등의 요리집에서도 인기가 대단하였다 한다. 그래서 한창 명성을 날릴 때는 패물이 장안에서 꼽힐 정도로 많았다 한다. 일제시대 말기에 김여란 선생님이 잠적하신 적이 있는데,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고 거기에다 늘 주변에 구름떼 같이 끼어드는 한량들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김여란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우는 동안 김여란 선생님은 늘 건강이 안좋으셔서 소리를 하시는 일이 드물었고 제자들에게 소리를 잘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19세부터 7년간 춘향가 한바탕도 다 뗄 수가 없었고 초입부터 <신연맞이>까지 간신히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김여란 선생님 문하에 다시 들어가 재수(再修)하여 춘향가를 마저 다 배울 수 있었다. 김여란 선생님이 사설을 불러주시면 내가 받아 적어가며 배웠고 <신연맞이> 이후 대목을 배울 때는 김여란 선생님이 연로하셨고 건강이 무척 안좋으실 때라서 빨리 배우기 위해 녹음을 했다. 그런데 그때 녹음해 놓은 테입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
김여란 선생님은 성격이 매우 밝고 인자하셨다. 김여란 선생님은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신 탓에 몸이 많이 상하셔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래서 조카벌 되는 먼 친척 아이들을 데려다가 딸, 아들 삼아 키우셨는데, 김여란 선생님의 오빠 아들인 김갑수(본명 김영숙) 씨가 김여란 선생님을 어머니로 모셨고 현재 제사를 맡고 있다.
김여란 선생님은 춘향가, 심청가, 숙영낭자전을 두루 잘하셨다. 그 가운데에서도 단가 <적벽부>, <만고강산>, <천하태평가>, 춘향가 중 <이별가>, <옥중가>를 장기로 잘 부르셨다. 판소리뿐 아니라 가곡, 가사, 시조, 서도소리, 춤도 잘하셨다. 김여란 선생님은 판소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 “판소리는 성악으로서의 측면이 강하다. 아니리가 너무 길면 좋지 못하다. 발림도 너무 많이 구사할 필요는 없다. 정정렬 선생님이 짠 춘향가에 필요 이상으로 아니리가 많이 들어있다. 판소리 공연 시간이 너무 길게 소요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김여란 선생님은 내게 춘향가를 가르쳐 주실 때 필요없다고 생각하시는 아니리 몇 대목을 지적해 주시면서 빼고 부르라고 하셨다. 현재 내가 부르는 정정렬제 춘향가는 5시간 35분 가량 된다.
1980년 무렵, 김여란 선생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나는 선생님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서 남편과 함께 급히 약을 지어 달려가 보니 말씀도 제대로 못하셨다. 약을 드시고 난 후에야 말씀을 더듬더듬 하시기 시작했다. 극심한 경제고 속에서 생활하시다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신 후에는 고통이 더 가중되어 고생이 많으셨다. 1983년 5월 3일, 김여란 선생님은 노량진 셋방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김여란 선생님은 만년에 공연, 방송 출연, 녹음을 무척 싫어하신 탓에 녹음이 귀하다. 그래서 나는 김여란 선생님의 녹음이 없어서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 거의 들어보질 못했었다. 그런데 명인기획에서 김여란 선생님의 녹음을 카세트테입에 모아서 들려주니 무척 기쁘다. 또한 김여란 선생님의 녹음이 귀해서 여태 김여란 선생님의 독집 음반이 한 장도 제작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명인기획(국악기록보존연구소)에서 김여란 선생님의 독집 음반을 기획한다 하니 제자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아 제자로써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도 고맙다.
1960년대에 내게 방송 섭외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김여란 선생님은 “최승희는 소리 들을 만하려면 아직 멀었다. 방송 출연시킬 수 없다”고 하면서 방송국 사람들을 돌려보낸 바 있다. 나는 선생님이 무척 원망스러워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대중 앞에 나타나면 큰 인기를 끌 수 없고 방송 출연같은 것이 소리 공부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조금씩 소리를 인정받기 보다는 소리를 완성한 다음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명창 소리를 듣도록 하여라.” 당시에는 선생님을 무척 원망했지만 지나고 보니 선생님 말씀이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여란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스승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거의 없으나 이런 말씀을 하신 바 있다. “정정렬 선생님은 음이 고르고 또 제자에 따라, 용도에 따라 연극 소리와 판소리를 구별하여 가르쳤고 또 판소리는 성별에 따라 여자 소리와 남자 소리를 가르쳐 주었다. 정정렬 선생님은 미남이었고 발림과 작곡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목은 궂은 편이었다.”
정정렬 선생님은 사고 방식이 매우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야기 전개 방식과 구성에 있어 획기적인 대목들이 많으며 새로운 소리제를 만들어낸 창의력이 매우 놀랍다. 춘향가 중에서 <해 소식> 같은 대목을 보더라도 정정렬 선생님은 작곡력이 매우 뛰어나서 천부적인 음악 재질을 타고난 분이라 생각된다.
정정렬제 춘향가의 가장 큰 특징은 붙임새가 다양하고 기묘하다는 데 있겠다. 정정렬 선생님이 목이 궂었기 때문에 목구성에 있어서 방울목을 개발하여 즐겨 썼고 붙임새에 있어서 잉어걸이, 완자걸이를 특기로 많이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방울목은 춘향가 중에서 <박석티>(진양조)와 같이 느린 장단의 대목에서 주로 쓰이며 빠른 장단에서는 쓰기 어려운 기법이다. 잉어걸이는 소리를 달고 엎어서 가는 것인데, 합에서 소리를 딱딱 끊어서 소리를 가지고 가면 단조로우니까 앞쪽에서 길을 낸 소리를 다음 합에서 소리를 끊지 않고 겹쳐서 소리를 얹어서 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춘향가 중 <신연맞이>에서 “키 크고, 질 잘 걷고, 맵씨 있고, 어여쁘고, 영리헌 저 급창”의 경우 “영리헌”은 방울목이고 “질 잘 걷고”가 잉어걸이다. 완자걸이는 양반처럼 점잖게 걸어 가다가 간혹 엇걸어가는 것을 말한다. 정정렬제는 붙임새가 복잡하고 다양해서 웬만큼 북반주에 자신이 없는 고수가 정정렬제를 반주하려고 하다가는 망신을 당하기 쉽다. 그러나 소리꾼과 고수가 장단이 삐지 않고 맞아 떨어지기만 하면 그 이상 묘한 맛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또한 정정렬제이다. 정정렬제 춘향가 중에서 <춘향모 모르게 이도령과 춘향이 첫날밤 지내는 데>, <오리정 이별>이 특히 멋있다.
정정렬 선생님은 소리 공부를 무척 많이 하여 목은 궂었으나 공력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정렬 선생님의 소리는 바위 덩어리 쾅 던져 놓는 것 같고 임방울 명창의 소리는 조약돌 톡 던져 놓는 것 같다”고 한다.
정정렬 선생님의 소리를 들어보면 내가 부르는 것과 거의 같다. 김여란 선생님께서 정정렬 선생님의 소리를 제대로 배우고 내게 열성적으로 가르쳐 주신 덕분에 내가 정정렬 선생님의 소리제를 잇게 된 것이다. 나는 김여란 선생님 문하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전수 장학생이 되었고 이수자, 기예능보유자 후보를 거쳐 1992년 6월 20일에는 정정렬제 춘향가로 판소리 기예능보유자(전라북도 지정)로 인정받았다.
나는 김여란 선생님에게 배운 정정렬제 춘향가를 김행초(부안국악원 강사)에게 가르친 바 있고, 요즘은 지영희 선생님(해금, 피리, 호적, 장고의 명인)과 성금연(가야금산조와 병창의 명인) 선생님의 장녀인 지성자 씨와 소주호(전주도립국악원 창극단) 등 여러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끝)

2000년9월20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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