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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무속음악 명인 김부전
* 이 글은 이자균 님께서 국악기록보존연구소의 인터넷 홈페이지 '히어코리아닷컴'(사이버 국악음반박물관)의 원고 청탁을 받고 기고해 주신 것입니다. 이 원고는 2000.6.10 디스켓으로 받아 편집하였습니다. 귀한 옥고 주신 이자균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기 무속음악 명인 김부전
글/이자균(민속음악학자)

남쾌자를 입고 삼불 제석이 그려진 부채 하나만 들고서 불사거리 끝에 밤 대추 “산”을 주고 나서 축원 덕담을 하고 나서는 타령 장단을 달아놓고서 굿을 구경하는 사내들이나 울 넘어서 까치 발로 발등거리하며 구경하는 여염집 아낙네들이나 과방간에서 굄질을 하는 남정네들이나 부엌에서 다음 “석(거리)”에 내 갈 진설물을 차리는 재가집 기주(보통은 안주인을 말함)는 공수 받으랴 엿 목판에 별비를 내랴 온 정신이 빠져있는 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하거나 말거나, “칠관청”에서부터 “네 가락 빗청”까지를 관수(악사)가 아래 위로 더듬으면 예의 “엇붙임”을 구사하며 소리를 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부전이다.
김성연과 곽명월 사이에서 난 김부전(1916-1951.11.13.오전 10시 작고)은 시흥군 군자면 신길리 태생으로 너무 인물이 잘나고 귀태가 질질 흘러 별명도 걸맞게 “부전 조개”였다.
김부전 하면 경기도 남부 특히 시흥, 인천, 화성, 수원 등지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문틈에 꽂아둔 “꼬치떡”을 하나 얻어 먹으려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명무이자 명창이었다.
이의 친정 모친인 곽명월(1870-196?) 역시 시흥 군자동에서 군자봉 금부 대왕(신라의 29대 왕)을 위하는 당주로서 곽명월 하면 그 일대에서는 감히 얼굴도 제대로 못든 녹녹치 않은 재주와 영험함을 보인 이였다. 일본 제국 시절에 시흥 주재소의 한 순사가 말을 타고 가다가 당 앞에서 말을 안내리고 그냥 타고서 가려고 하자 군자봉 서낭님이 노해서 쪽빛 하늘이 갑자기 먹장 구름이 끼면서 천둥 번개가 치고 말굽이 안떨어져 결국 일본 순사가 내려 간단한 서낭 상을 차려놓고서 빌자 구름이 서서이 걷히고 오색 찬란한 무지개 구름다리가 서고 말도 움직여 마을을 지나갔다는 얘기가 지금도 그 마을에 전해져 오고 일제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직접 목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또 다른 순사는 “그러면 네가 얼마나 영험하고 신통하냐”하며 시험을 해보기 위해서 입을 문창호지로 봉하고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자 온 구주물 동리의 소, 돼지, 닭 등 가축이 죄다 시사로 쓰러지고 “옘병”이 돌기 시작하여 일 주일간을 서낭님을 모시고서 예정에도 없던 마을굿을 하기도 하였다 한다.
목소리가 남자처럼 우럭우럭하며 항상 “남장”을 하고 다니며 시종하는 이가 늘 있어서 곽명월이 나들이를 하면 마을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서 안부를 묻곤 했는데 돈도 없고 저승 사자가 왔다 갔다 하는 다급한 이한테는 집으로 불러들여서 병굿도 해주고 “나중에 낫거들랑 맘이나 편하게 먹고 잘 살아라” 하면서 타일러 보내는 인정도 있었던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같으면 약이 흔하고 좋은 게 있어서 고쳤을런지도 모르는 눈에 넣어도 안아플 천하가 내린 재주꾼 외동딸 부전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서도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당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대범한 성격을 지니기도 하였다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침술이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병든 이들을 고치는 것은 현대에 와서도 의학이 발달하고 의술이 점차로 가지 벋은 바가지 줄기처럼 나가지만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구실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수가 있는데 한 마을의 사제자로서 맡은 임무를 넉넉하게 했다고 볼 수가 있겠다.
곽명월의 부친 춘록은 아마도 국악에 종사한 것 만은 분명한데 그 행적을 알 수가 없으며 모친 임남순 역시 알 수가 없다.
김부전의 남편은 역시 대대로 국악을 하는 집에서 난 이로 시흥에서 살다가 안산으로 이거해 와서 악사로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주로 현악기에 재주가 좋아서 굿청에서 활동은 별반 없었다 한다.
부친은 가야금, 거문고, 피리, 해금에 능하였는데 1988년에 세상을 버린 줄타기 기예능보유자였던 김영철의 부친과 형제간이며 이의 집안이 모두 국악에 종사를 하였다.
김부전의 활동 지역은 주로 경기도의 서남부 지역인데 이 지역은 주로 시나위 지역권이라서 새벽 서리 찬 밤에 시나위 가락에 얹어서 소리하는 양은 그 누구도 재주를 넘보지 못했다. 피리의 네 가락을 다 잡아 치켜 올려도 청을 못댈 정도로 목구성이 높았고 또한 상상 꼭대기까지 치켜 올렸다가 뚝 떨어뜨리는 그 멋은 지금으로서는 감히 자다가 꿈에서도 듣지 못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한다. 그리고 붙임새가 기가 막혀서 맛있게 굴리는 소리며 던져놓고 내지르는 소리하며 장단 사이 사이로 비켜 가면서 시김새를 하는 그 멋은 일세가 진동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새도 어깨에 앉았다는 <새타령>의 명창 이날치나 솔거에 비긴다면 지나친 찬사일까 아닐까 한번 상상에 맡겨 보겠다.
현존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 경기도의 <창부타령>은 만수받이 하고서 나중에 각 도의 창부가 한양 성내로 들어오는 것을 소릿조로 하고 일년 도액풀이를 굿거리에 맞춰서 하지만 이는 강신무들이 하는 것이고 세습무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사설은 비슷한 것도 있지만 주로 '텃 대감'을 놀 적에 하며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하는 '대감'은 일제시대, 즉 1930년대 쯤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서낭을 놀고 다음에 창부를 놀 적에 대감타령을 노는데 이는 예전에는 없던 무의식이다.
불사거리 뒤에 불사타령을 하면서 한판 흐드러지게 놀고 축원 덕담도 하고 명잔 복잔도 주고 그렇게 하였지 지금처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즈막에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경기민요 하는 이들이 <대감놀이>라고 해서 하는 것은 일제시대 유성기음반에는 녹음되어 있지만 1960년경 부민관에서 경기민요를 한 심모씨가 소리도 박고 공연 무대에서 <대감놀이>라고 해서 부른 것이 굳어져서 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굿청에서 부르는 <창부타령>과 경기민요를 하는 이들이 부르는 것은 창법이나 선율이 전혀 다르며 김부전과 비슷하게 하는 이는 인천 영종도 출신 남자 소리꾼으로서는 판막음을 한 전태용(1922~1991년)이 있을 따름이다.
전태용은 김부전이 굿 하는 곳마다 따라가서 악사 노릇도 하고 소리 목을 배웠는데 전태용이 원체 음악성이 좋고 목구성이 좋아서 김부전의 목구성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김부전의 소리 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있으며 올해 4월 카세트테입과 컴팩트디스크로 출반되었다.
이렇듯 하늘이 내린 목을 지닌 김부전도 때를 잘못 만나서 아까운 재주를 펼치지 못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재주 자랑을 하던 이들을 뒤로 하고 한 많은 삶을 걷우고 육이오 전쟁 통에 집에서 눈을 감았다.
지금도 안산의 군자봉 서낭님을 기리는 마을 굿은 음력 상달(시월 초 삼일)에 매년마다 치루고 있어서 곽명월과 김부전 모친의 맺힌 한을 풀어주리라 믿는다.


2000년6월11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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