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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무속음악 명인 김만보<1>
* 이 글은 1999년 한국고음반연구회 논문집 [한국음반학 제9호]에 실린 국악기록보존연구소장 노재명이 발표한 "20세기 후반 제주도 전통음악 현장조사자료와 음반목록"의 일부분이다.

제주도 무속음악 명인 김만보<1>
현장조사,대담정리,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김만보(金萬寶:본명)는 1930년 1월 1일(음력)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함덕리 1126번지에서 부친 김성용과 모친 정녀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한다. 이 가문이 함덕에 터를 잡고 살아온 것은 김만보가 4대째라 한다.
김만보의 부친 김성용은 병술생으로 지금 생존시 105세인데 삼대독자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나 심방일을 했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25∼27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김만보의 모친 정녀 역시 심방으로 남편 김성용보다 5세 연하이며 약 30년 전에 57세로 작고했다 한다. 김만보의 부모인 김성용과 정녀가 굿을 했던 지역은 제주 전역과 부산이라 한다.
김만보 가문에서 심방일을 하게 된 것은 부모인 김성용과 정녀 세대 때부터라고 한다. 그 전에는 이 가문이 양반집이었다 한다.
김만보는 27세 때 외숙인 정두삼 심방한테 31일간 신굿을 받았다 한다. 정두삼은 김만보의 모친 정녀(장녀)의 바로 밑 남동생이다. 정두삼은 신촌 사람이며 을사생으로 지금 생존시 95세인데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정두삼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이 정두삼의 아들이 현재 제주시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다 한다.
정두삼의 남동생 정주병은 조천의 큰심방으로 경술생이며 지금 생존시 89세인데 오래전에 작고했고 슬하에 자손은 없다고 한다. 정주병의 부인 안춘생은 안사인의 고모로서 심방이었는데 이 사람 역시 세상을 떠났다 한다.
정주병 바로 밑에는 두명의 여동생 정순자와 정모씨가 있었는데 이들은 심방이 아니라 한다. 그리고 그 아래 남동생 정주석(막내)은 소띠이며 지금 생존시 75세이고 심방은 아니며 조천 소방대장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한다. 정주석의 부인 김옥선 역시 심방이 아니었다 한다.
김만보의 외조부 정일화(본명)는 높은 벼슬을 해서 ‘정동지’로 불렸으며 외조모는 김모씨인데 두 사람 모두 심방이었다 한다. 김만보의 외가에서 이 외조부모의 앞세대는 심방과 무관했다 한다.
김만보(막내) 외에 그의 형제 가운데 심방이 된 사람은 큰형 김만홍(장남) 뿐이다. 김만홍은 37세에 작고했는데 지금 생존시 90세라 한다. 김만홍의 바로 밑 남동생 김만경은 지금 살아있다면 80세인데 김만홍 작고 후 1년 뒤 세상을 떠났다 한다. 김만경 밑에는 여러 동생들이 있는데 바로 아랫동생들은 어린 나이에 요절했고 일찍 죽은 그 동생들 밑에 김국화, 김명월과 같은 여동생이 있다 한다. 김국화는 약 30년 전에 타계했다 한다.
김만보는 굿을 따로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다른 심방들이 하는 것을 한번만 봐도 금방 익힐 수 있었다 한다. 그는 제주 전역과 부산에서 굿 활동을 하였다 한다. 부산에서 활동한 제주 출신의 심방으로는 주댁교(규)(男), 강순녀(애)(女), 고중녀(女), 고정옥(男), 서신관(男), 오근식(男) 등이 있는데 이들은 지금 살아있다면 120여세 전후의 나이가 된다고 한다. 김만보는 이들과 어울려 부산에서 환자굿, 서낭굿, 영등굿, 고혼굿 등 제주굿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에서 살고 있던 이들이 역으로 제주도로 와서 굿을 하기도 했다 한다. 김만보는 김석출 등 동해안 무속인들은 잘 모른다고 한다.
김만보는 무업 종사 이외에도 한때 선장 생활도 했으며 28세 무렵부터 3년간 천주교 전도사를 한 바 있다. 그리고 40여세에는 일본 ‘홍법대사’라는 절(진언종)에 들어가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는데 이 절에서 ‘권률사’라는 이름의 명주를 받았고 일본 시기산에 ‘대흥사’라는 절을 지어 운영하기도 했다 한다. 지금은 이 대흥사가 다른 이의 소유로 되어 있다 한다.
김만보의 증언에 의하면 제주도 심방들 사이에는 옛부터 변말(은어)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도 굿이 우리나라 전국의 굿 가운데 가장 시끄럽다 할 만큼 요란하다고 한다.
제주굿에서 쓰이는 장단으로는 삼석, 중판, 자진석, 느진석이 있다 한다. 음성은 옥황상제를 비롯한 각 구신에게 청하는 소리이고 북은 천황궁, 징은 지황궁, 꽹과리는 인황궁, 장고는 깊은궁에 갇혀있는 존재들을 참석토록 이끄는 소리이고 목탁은 죽어서 물고기로 환생한 사람들의 영혼이 모이게끔 하는 소리라 한다. 그리고 뱀은 하늘의 칠성 제자로서 가장 무서운 귀신이고 범과 말은 산신의 제자, 용은 용왕의 제자, 거북이는 용왕국의 사자라 한다.
몇 백년 전에는 함덕에 10가구, 신흥에 3가구가 있었다 한다. 함덕리에 본래 있었던 큰 본향당 신명(본초)은 동편금석 서편왕석 서울 먹장골사 입도환 급수황하늘, 알까름 서물한집이라 한다.
동편금석 서편왕석 서울 먹장골사 입도환 급수황하늘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데 현재 김만보 아들 김재훈이 살고 있는 집 앞쪽으로 이십보 정도 되는 곳에 뽕나무, 우물과 함께 있었다 한다. 지금 일반사람들이 알기로는 알까름 서물한집이 동편금석 서편왕석 서울 먹장골사 입도환 급수황하늘보다 더 큰 본향당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는 그 반대라 한다.(계속)

2000년5월28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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