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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강순영의 국악세계' 음반(CKJCD-001, 1CD, 1998년, 섭외·기획·해설 집필:노재명)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강순영 명인의 생애와 예술<1>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강순영(姜順令, 예명:姜順今)은 1927년 9월 20일(음력) 전북 남원 천거리에서 태어났다. 강순영은 남원에서 출생하여 젊어서는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33세 때 혼인하여 39세 때 남편을 따라 경상남도 진주로 이사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강순영의 아버지 강창길은 경남 진주에서 삼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 성모씨(成某氏)는 경남 함양에서 출생하였다. 강순영은 1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강순영의 위로 언니 강모씨(姜某氏), 강모씨, 강필순, 오빠 강태근, 언니 강복달, 강복수가 있었는데 현재 강순영과 언니 강복달만이 생존해 있다 한다. 강순영은 7남매 가운데 막내딸이다 보니 첫째언니 강모씨의 자식 중에는 강순영보다 먼저 태어난 이가 있고 둘째언니 강모씨의 자녀 중에서는 강순영과 동갑인 사람이 있다 한다.
강순영의 친형제 가운데 국악을 한 사람은 강순영뿐이며 그의 언니 강복달의 딸 안숙선이 현재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로 활동 중이며 그 동생 안옥선도 현재 국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강순영의 오빠 강태근은 슬하에 10남 5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넷째아들 강정열이 현재 전북대학교 가야금 강사이자 가야금산조와 병창의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강순영의 조카인 안숙선, 안옥선, 강정열 모두 초등학교 때 강순영 문하에서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익혔다. 그리하여 안숙선, 안옥선, 강정열은 가야금 연주에 있어서 기초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또한 안옥선은 어려서 이모인 강순영에게서 배운 신관용류 가야금산조를 음반으로 낸 바 있고(1992년 대성음반 CDAS-0581, 1CD) 강정열은 그 산조로서 1985년 전주대사습대회에 참가하여 기악부 장원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안숙선은 근래에 강순영에게서 가야금산조를 틈틈히 재학습하고 있다 한다.
안숙선의 재능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은 그의 이모 강순영이었고 안숙선이 일찍부터 국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바로 그 이모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안숙선은 9세부터 수년간 그 이모에게서 가야금과 무용을 배우면서 전통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안숙선은 강순영의 소개로 주광덕과 김영운 문하에 들어가서 판소리를 사사했다. 강순영의 증언에 의하면 안숙선을 가르친 명창 주광덕은 열사가를 특히 잘 불렀다고 한다. 암튼 그 옛날 강순영의 노력이 있었기에 훗날 안숙선과 같은 명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순영은 애써 겸손하게 말한다. 조카딸 안숙선이 인간문화재가 되기까지 그 스승 박귀희 명인의 노고가 가장 컸노라고. 강순영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자극적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화장도, 한복도, 가야금 연주도, 판소리도 뭐든 그러하다. 강순영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다.
강순영 명인의 집안에는 유능한 전통 예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강순영의 백부 강원중은 줄타기의 명수였고 그 아들 강도근은 판소리 인간문화재였고 강순영의 중부 강모씨(姜某氏) 아들 강백천은 대금산조 인간문화재였다.
강순영의 사촌오빠인 강도근은 아버지 강원중과 어머니 이판녀 사이의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는데 강도근의 위로 강석근, 강석춘과 같은 형들이 있고 아래로는 강선화(여), 강해근(남:현재 71세 서울 거주) 같은 동생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강석춘이 일제 때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한 바 있다. 그리고 강석근의 딸 강옥련(남원 태생)은 판소리 활동을 한 바 있다.
강순영의 사촌오빠 강백천은 슬하에 강산홍과 강초운 자매를 두었는데 둘다 판소리 명창이었다. 강산홍은 강순영의 조카지만 강순영보다 7,8세 가량 연상이었다. 강산홍은 수궁가를 특히 잘 불렀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진주에서 작고했다 한다. 강초운은 강순영보다 5,6세 가량 연하로서 언니 강산홍한테 판소리를 배웠는데 춘향가를 특히 잘 불렀고 슬하에 딸 하나(현재 부산 거주)를 두었다 한다. 그리고 일제 때 이름을 떨친 가야금 명인 강태홍도 강순영의 친척뻘 된다. 강순영의 남다른 예술성은 이러한 집안 내력에서 비롯되었다.
강순영은 15세 무렵부터 3년 동안 신관용 문하에서 가야금을 배웠다. 신관용은 가야금 풍류, 산조, 병창 순서로 가르쳤다 한다. 강순영은 풍류의 경우 <본령산>과 <중령산>은 안배웠고 <세령산>부터 끝까지 익혔는데 지금은 거의 모두 잊어버렸다 한다. 그리고 병창은 단가 <어화청춘>, <객래문아>, <공도란이>, 춘향가 중 <사랑가>,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 올라가는 데> 등을 배웠다 한다.
강순영의 스승 신관용(申寬龍)은 1911년 무렵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동향인 김제 출신 이영채 문하에서 가야금 풍류, 산조, 병창을 배웠다 한다. 이밖에도 신관용은 여러 스승들에게서 판소리, 거문고, 피리, 대금, 해금, 양금, 장고, 꽹과리 등을 익혀 여러 음악에 능했다고 한다.
강순영은 19세 때부터 5년 동안 스승인 신관용과 함께 호남창극단에 소속되어 공연 활동을 했고 창극단에 몸담고 있던 22∼24세 때 신관용 문하에서 가야금을 재학습했다 한다.
당시 호남창극단에는 박봉술, 강도근, 강사홍, 강종철 같은 남자 명창과 정채란, 최설향, 김명화, 강옥련 같은 여류 명창이 있었다 한다. 당시 창극 공연을 하면 박봉술, 강도근 같은 남자 명창들은 중역을 맡았고 젊은 여류 명창들은 단역을 맡았다 한다. 정채란은 전북 남원 태생으로 강순영보다 15세 가량 연상이었으며 창극 무대에서 연기를 무척 잘했는데 아편 중독으로 건강이 안좋았다 한다. 최설향은 전북 김제 사람으로 판소리를 잘했고 김명화는 경북 장수 부근 출생이라 한다. 최설향은 창극단 활동시 신관용과 함께 살았다 한다.
강순영은 호남창극단 활동 시절인 24세 때 신관용 문하에서 가야금 재학습을 마치고 남원에서 신관용과 헤어진 뒤로는 그 스승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한다. 신관용은 당시 남원을 떠나 마산으로 갔다고 한다. 신관용은 전주에서 주로 거주했고 남원을 자주 왕래하며 활동했다 하는데 아편 중독으로 중년을 매우 비참하게 보내다가 47세 무렵에 김제에서 약물 중독의 후유증으로 타계했다고 한다.
신관용은 여러 음악에 능했지만 가야금을 가장 장기로 삼았고 가야금으로는 주로 산조를 연주했다 한다. 풍류는 별로 연주하지 않았고 병창은 무대에 올라가면 자주 했다 한다.
신관용의 산조 녹음은 개인 소장 릴테입 3종이 남아있는데 국악 애호가들이 그의 산조를 듣고서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신관용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얌전한 맵씨에 성품이 점잖았고 매우 고박하고 기품있는 산조를 들려주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신관용은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땐 그의 진가를 미처 간파하지 못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한 명인이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신관용의 산조는 음악성이 부족하여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치 도를 닦듯이 묵묵히 실력을 연마하고 조용히 풍류를 즐기다가 세상을 떠난 신관용의 성품 탓에 그의 산조는 다른 유파에 비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신관용은 심한 아편 중독 때문에 제자들이 오래 붙어있질 못했다. 아편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제자를 성의껏 가르치질 못했고 그런 탓에 수제자가 많지 않다. 신관용의 가야금산조를 이어받은 이로는 강순영을 비롯해서 송준섭, 이한양, 조광옥을 꼽을 수 있고 현재 강순영의 제자들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한양과 조광옥은 강순영이 22∼24세 때 신관용 문하에서 가야금을 재학습할 당시 함께 배운 사람들이라 한다. 이한양은 명고수였고 신관용 문하에서 취미로 가야금을 배웠는데 가야금 성음이 발발성이었다 한다. 조광옥은 작고한 판소리 명창 조난옥의 오빠이며 조난옥은 강순영보다 20세 가량 연상이었다 한다. 신관용의 후손은 현재 전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국악의 맥을 잇는 후손은 없다고 한다.(계속)
2000년5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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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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