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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숨은 명인명창 발굴 프로젝트-국악 현장 조사보고서이다.
능주 씻김굿 명인 조도화<1>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조도화(曺桃花)의 본명은 조동운(曺東雲), 별명은 조박(曺博), 조두(曺頭)이다. 그는 1913년 9월 30일 전남 화순군 능주면 한천리에서 부친 조정만(=조병남)과 모친 오자근 사이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도화의 모친 오자근은 다름아닌 일제 때의 가야금병창 대명인 오태석의 고모이다.
조도화의 주된 활동 지역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현재의 행정명)이다. 지금은 면소재지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목사(牧師)가 있던 큰 마을로서 지금의 광주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한다.
조도화는 처음엔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무업을 거부하고 신식학교 공부에 몰두했으며 그리하여 중학공부까지 마치고 은행원이 되었다. 순천의 호남은행이 첫 부임지였고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 거기서 1년쯤 근무하다가 광양의 광산금광의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순천기생조합 권번의 서기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그리하여 그는 그렇게 싫어했던 화류계와 숙명처럼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기생조합의 선생으로 있던 집안 어른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한다.
한량치고 소리 한대목과 고장북(소리북) 장단 못치는 이가 없던 시절인데다 권번에서 일하다보니, 그리고 재주와 흥을 타고난 터이니 그 또한 북채를 자연스레 잡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그는 조상들의 업을 대물림하게 된다. 조도화의 소리북 스승은 이한량과 김막동이었고 인간문화재 김명환 명고가 한때 조도화 문하에서 북가락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한다.
조도화는 순천권번에서 활동하다가 얼마 후 나와 독자적인 공연 단체를 꾸며 국내뿐 아니라 만주, 일본 등 인근 국가를 다니며 순회 공연 활동을 하였다 한다.
조도화가 일제 때부터 1950년대까지 창극단체 등에서 함께 교류한 국악인은 이동백, 김채만, 송만갑, 김창룡, 정정렬, 유성준, 장판개, 장도순, 장한똑똑이, 정종근, 김정문, 정응민, 박동실, 조몽실, 박기채, 박지홍, 공창식, 공기남, 조동선, 임소향, 오태석, 한주환, 박록주, 임방울, 김여란, 박초월, 정광수, 박귀희, 김소희, 조소옥, 조난옥, 김춘앵, 김연수, 조명수 등이라 한다.
조도화의 조부 조상률은 능주의 유명한 고인이었고 부친 조정만은 태평소에 능했고 친형 조동선은 판소리와 꽹과리에 능했다 한다. 사촌형 오태석은 일제 때 대표적인 가야금병창 명인이었으며 오촌당숙 조몽실 또한 일제 때 유명한 서편제 판소리 명창이었고 7촌형 조명수는 일제 때 명성을 떨친 관악기 명인이었다. 조몽실은 현재 창극계에서 맹활약 중인 조영숙의 부친, 조명수는 판소리 명창 조순애의 부친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경환, 박기채, 김채만, 공창식 등도 조도화와 친인척간이다.
조도화의 증언 가운데 능성(능주의 옛 지명) 신청에 대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능성신청은 현 행정구역 상으로 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228번지 300여평 부지에 있었다 한다.
신청은 마을의 중요 행사(굿/제사)를 관장했던 곳이자 예인들의 교육이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한일합방이 되자 신청건물은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갔고 그 결과 신청은 문을 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신청을 지킨 이는 줄타기의 명수 조떼깔이었다. 조도화와 친인척간인 조떼깔은 나막신을 즐겨 신었기 때문에 ‘떼깔 떼깔’ 신발소리에서 생긴 별명이었다.
능주 장날(음력 14일)이었다. 맨상투 차림으로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장에 갔던 조떼깔. 그날 일본 순사가 상투를 자르라고 상투를 흔들고 두루마기에 먹물을 뿌려버렸다. 이 수모를 당하고 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조떼깔은 마당에 거적을 깔았다. 물 한그릇을 떠다 놓고 절을 한 다음 가위로 상투를 잘랐다. 잘린 상투를 부여잡고 한없이 울었다. 결국 나라가 망하자 신청에 모셔둔 봉안(역대 신청 어른들의 위폐를 모셔둔 선생안)을 모두 싸들고 영벽정(목사, 이속 양반들이 풍악을 울리며 풍류를 즐기던 능주의 운치있는 정자) 아래 강가로 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울면서 봉안들을 모두 불태웠다. 봉안을 모두 태우고 집에 돌아온 조떼깔은 마당에 거적을 깔고 몇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할 뿐이었다 한다.
그런 조떼깔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것은 열살이 채 안된 그의 아들이었다. 그 조떼깔의 아들은 다름아닌 전라도 시나위의 마지막 대가로 일컬어지는 피리, 대금, 태평소의 명인 조계남이다. 조도화는 바로 이 조계남의 조카뻘이다. 조도화는 30대부터 당골판의 고인(악사)으로 활동하였는데 조계남이 작고할 때까지 굿판에서 함께 장단을 맞췄다 한다. 조계남의 스승은 능주 사람 송씨와 홍씨였다 한다.
조계남은 한때 당골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굿판을 떠나 인천으로 이사해 장사를 했다 한다. 그러나 여의치 못하여 결국 고향으로 내려와 굿에 다시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본래 당골집안이 아니었던 조계남의 부인은 시집와서 책을 놓고 굿을 배웠다 한다. 조계남은 자식 교육에 온 정열을 쏟아 부인과 함께 밤낮을 안가리고 굿을 하여 네 아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그리고 70대에 들어서도 거의 매일 굿을 하였고 암선고를 받고서도 입원할 때까지 굿판에서 피리를 놓지 않았다 한다. 조계남은 작고하기 얼마전 막내아들을 불러놓고 대금을 불어보게 하고 춤을 춰보게 하였다 한다. 그리고는 이 일(무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배워둬라 했다 한다. 이 대금 속에는 신선의 세계가 있으며 좋은 것이니 나중에 나이들고 적적할 때 불면 좋을 것이라고 일렀다 한다.
조도화의 표현에 따르면 예전에 화순지역엔 명인명창(당골)들이 ‘꽉꽉 찼었다’ 한다. 허나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떴거나 은둔, 아니면 서울로 가서 출세하여 인간문화재 국악인이 된 사람이 10여명 가량 되고 현재 화순지역에는 고작 능주 2명, 춘양 1명, 도암 1명, 한천 1명 모두 5명의 당골만이 남아있을 뿐이고 모두 80세 전후의 고령이며 그나마 무녀들은 이제 무업 활동을 기피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정통 고인은 조도화만 남았다.
조도화가 중년 이후 주로 함께 일한 무녀는 박정녀(조계남의 처/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204번지), 조양금(조도화의 형수/전남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 27번지), 임장업(전남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 775번지)이라 한다.
망자혼사굿의 경우 넋상자(넋당석)을 신랑 신부 각각 2개를 준비하는 원칙인데 신부의 넋상자는 색종이를 써서 화려하게 만들고 신랑의 것은 흰색으로 담백하게 만든다. 신랑과 신부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사모관대 원삼족도리를 입혀 산 사람처럼 혼례식을 치루고 신방까지 차려준 후에 씻겨서 왕생극락과 저승에서의 부부화락을 기원한다. 물에 빠져 죽은 경우에는 혼건지기를 해서 혼을 모셔다가 혼사굿을 해준다.
능주의 씻김굿의 절차는 총 12거리, 혼맞이굿-안당-본향-선부리-제석굿-고풀이-오구굿-씻김굿-길닦음-해원-종천맥이-사자풀이 순으로 진행되며 망자혼사굿의 경우에는 혼맞이굿과 안당 사이에 혼례식이 추가되어 행해지게 된다. 곽머리 굿을 능주에선 진씻김굿이라 하며 능주에서는 그밖에 경사굿(재수굿), 성주굿 등의 굿 종류가 있다. 능주 굿의 12거리의 세부내용은 각각 이러하다.
혼맞이굿은 이승에서 극락왕생 못하는 망자의 넋을 씻겨 저승으로 천도하기 위해 혼을 받아 집으로(굿청으로) 모셔드리는 거리이다. 망자가 죽은 장소에 가서 맞는 것이 원칙이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일 때에는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 정결한 곳을 택하여 하거나 삼거리에서 하며 그것도 여의치 못하면 대문밖에서 동서남북에 절을 하여 넋을 불러들인다. 혼을 맞아 집으로 들일 때는 베를 문밖에 미리 깔아 놓고 맞이한다. 삼현육각이 연주하는 길군악 장단에 맞춰 굿상을 받쳐 지체하지 않고 들어온다. 혼맞이굿은 1시간 가량 소요된다.
혼례식은 대례상을 산사람과 똑같이 준비한다. 그리고 허수아비로 만든 신랑 신부가 하님의 부축을 받고 입장하여 집사의 홀기에 따라 산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혼례를 치른다. 혼례를 치르고 정갈히 마련된 신방으로 신랑 신부를 옮겨 새로 마련한 이부자리에 불을 끄고 신방을 차려준다.
조왕굿은 조도화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능주에서는 없는 속칭 ‘신식 나이롱굿’(비정통굿)이라 한다. 근래에는 간혹 하기는 하되 부정을 금하므로 교통사고, 총살, 자살, 익사 등 유혈악사한 망자일 경우에는 조왕굿을 생략한다고 한다.
안당은 안택 또는 선영굿이라고도 한다. 고조부 이하 4대 3대 조상님의 선영과 성주님에게 굿을 하게 된 내력을 고하며 많이 흠향하고 오늘 경사를 같이 축하해 달라고 축원한다. 시종 방안에서, 줄곧 살풀이 장단의 삼현육각 반주와 무가로 일관된다. 이 거리는 5-6분 가량 소요된다. 조도화의 증언에 따르면 삼현육각은 피리2(한쌍), 대금1, 해금1, 장고1, 북1 편성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계속)
2000년5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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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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