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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한농선<2>
* 이 글은 1983년 녹음, 1997년 이멕스폰음반회사에서 제작된 '한농선 흥보가' 음반(IMCD-9001, 2CD)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판소리 명창 한농선<2>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한농선은 21세 때(1954년)부터 킹스타레코드, 대도레코드, 지구레코드, 유니버살레코드, 대성음반 등 여러 음반회사에서 단가, 판소리, 창극, 민요 음반을 취입하였고 방송과 공연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미 1950년대에 서울에서 이름을 떨쳤다.
1962년(29세) 무렵 한농선은 마침내 박록주 문하에 들어가서 판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6.25 전쟁 때 인연을 맺은 뒤 10여년만의 재회였다. 한농선은 이때부터 1979년 박록주가 작고할 때까지 단가 <백발가>, <편시춘>, <운담풍경>, <홍문연>, <죽장망혜>, 흥보가 등을 사사했다.
박록주는 단가를 계면조로 불러서는 안된다고 했으며 민요는 소리 버린다고 못부르게 했다 한다. 그리고 박록주는 사람에 따라서 목 성음에 맞게 소리를 달리해서 가르쳤다 하며 밥을 많이 먹으면 소리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소식을 했다 한다.
1965년 한농선은 정성숙, 성창순과 함께 박록주 선생을 모시고 안양 삼막사로 가서 백일공부를 한 바 있다. 이것이 박록주에게는 ‘늙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자 아끼는 제자들과의 나들이였고 한농선을 비롯한 학도들에게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삼막사는 다름아닌 박록주가 23세 때 정정렬 선생을 모시고 춘향가 중 <신연맞이> 등을 공부했던 곳이다. 환갑을 치룬 박록주는 한때 젊음을 바친 그 곳에 다시 가보고 싶었고 그리하여 백발을 잊은채 추억에 잠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제자 한농선은 거기에 정말 마음먹고 들어가서 코피 터지게 공부를 했다.
한농선은 안양 삼막사에서 아침에 수업을 받고 점심부터는 배운 것을 복습했다. 복습이 충실하고 익히는 진도가 빠르면 저녁에 또 다른 소리를 배울 수 있었다. 한번 수업에 10∼15분 분량을 학습하였고 성음 하나라도 제대로 못하면 진도를 멈추고 될 때까지 연습해야 했다. 한농선은 삼막사에서 지옥훈련이라 할 만큼 강도 높은 학습을 통하여 박록주제 흥보가를 제대로 전수받을 수 있었다. 한농선은 삼막사에서 백일공부를 무리하게 하여 몸이 많이 쇠약해졌고 그래서 그뒤 7개월 가량 쉬어야 했다.
한농선은 39세 때(1972년) 박봉술 문하에서 적벽가를 배웠고 김소희 문하에서 심청가를, 박동진 문하에서 적벽가를 잠깐 배운 바 있다. 그리고 조상현 명창에게서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웠고 그 대신 한농선은 조상현 명창에게 흥보가를 가르쳐 주었다. 조상현 명창은 오래 전에 박록주 문하에서 흥보가를 배운 바 있으나 일부 잊은 것을 한농선이 복습시켜 준 것이다.
한농선이 현재 부르는 판소리는 박록주제 흥보가, 박초월제 수궁가, 조상현제 춘향가와 심청가이다. 이 가운데 흥보가로 한농선은 1982년 인간문화재 후보가 되었다. 그가 특기로 즐겨 부르는 소리는 박록주 문하에서 배운 단가 <백발가>와 흥보가, 조상현 명창에게서 배운 춘향가 중 <사랑가>와 심청가 중 <뺑덕이네 도망가는 데>이다.
박록주는 한농선에게 이런 당부의 말을 했다 한다. “소리 만들지 말고 흥보가 잊지 말아라. 변질시키지 말고 그대로 해라. 60세 넘어서는 나름대로 터득하는 바가 있을 테니 그때는 개성을 살려서 다소 바꿔 불러도 괜찮다. 그러나 바꿔 부르더라도 기둥만은 그대로 놔두거라.” 한농선은 이말을 잊지 않고 스승이 가르쳐준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하며 제자들에게도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다.(1995.12.15. 한농선 증언)
한농선의 음반 가운데 명반을 고른다면 단연 1983년에 대성음반에서 녹음된 2장짜리 흥보가 음반을 꼽을 수 있다. 한농선은 1954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음반회사에서 무수히 많은 음반을 취입하였으나 그 대부분은 여러 명창들과 함께 취입한 창극이나 민요 음반이고 판소리를 독창으로 취입한 것은 이 음반뿐이다. 또한 그의 독집으로는 유일하게 제작된 음반이기도 하다.
이 음반은 그의 첫 독집인 만큼 그의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목이 좋았을 때의 녹음이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계속)

2000년5월9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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