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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한농선<1>
* 이 글은 1983년 녹음, 1997년 이멕스폰음반회사에서 제작된 '한농선 흥보가' 음반(IMCD-9001, 2CD) 해설서에 실린 것이다.

판소리 명창 한농선<1>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한농선(韓弄仙, 본명:韓貴禮)은 1933년 9월 14일(호적상 1934년 1월 24일)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동이며 원적은 전남 영암이다. 현재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에 거주하면서 잠실본동 전수소에서 박록주제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한농선이 국악에 입문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하는데 그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가야금산조와 병창의 명인 한성기(김창조 제자)이다. 그리하여 한농선은 8∼18세 때 아버지에게 가야금 풍류, 산조, 병창을 배웠다.
한농선이 일본 동경에서 태어난 까닭은 그의 아버지 한성기가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한성기는 당시 일본에서 김록주, 이화중선, 김홍주, 이행란 등과 함께 단체를 만들어 순회 공연을 했다 한다. 그때 어린 한농선은 아버지가 공연할 때면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가서 구경하곤 했으며 간혹 무대에 올라가서 가야금 연주나 소리를 하며 재롱을 부리곤 했다 한다. 그렇게 한농선은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9세 때인 1942년 무렵에 태평양전쟁이 극심해지자 가족 모두 전남 해남에 있던 외가로 이사했으며 1945년 무렵에는 다시 목포로 이사하였다 한다.
한농선은 13세 때(1946년)에 최막동(오수암 제자)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고 양상식(오수암 제자) 문하에서 약 2년 동안 심청가 몇 대목을 배웠다. 그 당시(1946년) 한농선은 목포방송국 국악 라디오 프로에 출연하여 판소리와 민요를 불렀는데 그것이 그의 첫 방송이었다 한다.
한농선은 15세 때(1948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서 1948년부터 6.25 전쟁 전까지 강장원 문하에서 수궁가를 배웠다. 1.4 후퇴 때 한농선은 대구로 피난하여 살았고 6.25 전쟁 중에 국군의 모(某) 공작대로 들어가서 위문 공연을 다녔다. 그 위문 단체에는 오태석, 박록주, 신숙, 조농옥, 조소옥 등이 있었다. 훗날 사제지간이 된 박록주와 한농선의 첫 만남은 바로 그렇게 이루어졌다. 당시 한농선은 박록주 명창이 워낙 대원로라서 대하기가 어려웠고 전쟁통이라서 판소리를 배울 겨를이 없었다 한다.
1953년 전쟁이 끝난 직후 한농선은 20세의 나이로 정동방송국의 ‘국악 무대’라는 라디오 프로에 출연하여 판소리와 민요를 방송한 바 있다. 21세(1954년) 무렵에는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서 단가 <진국명산>, <강상풍월>, 수궁가를 배웠다.(계속)

2000년5월9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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