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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 | 신작국악

 
제주도 무속음악 큰심방 이중춘<3>
* 이 글은 1999년 한국고음반연구회 논문집 [한국음반학 제9호]에 실린 국악기록보존연구소장 노재명이 발표한 "20세기 후반 제주도 전통음악 현장조사자료와 음반목록"의 일부분이다.


제주도 무속음악 큰심방 이중춘<3>
현장조사,대담정리,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제주도에서 탈춤이 나오는 것은 이 영감놀이와 입춘굿 뿐이라 한다. 옛 입춘굿에 쓰인 탈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며 염저 신농씨는 농사일에서 가장 높은 성인을 상징했다고 한다. 입춘굿의 오리정 신청 과정 중에서 쌀을 던지는 의미는 잡신들한테 먹이려는 행위가 아니라 주신이 들어오십사 하는 뜻으로 그 신을 맞아들이기 위해 하는 것이라 한다.
이밖에 이중춘이 행할 수 있는 굿은 30여종으로 매우 다양한데 일주일굿, 닷새굿과 같은 큰굿에는 제주도 전통무속 기예능이 80% 이상 다 동원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큰굿은 거의 없고 대개 삼일굿, 이틀굿, 하루굿, 낮전굿이 많아서 이중춘 자신도 그 기예능을 나타낼 기회가 드물고 따라서 자연히 그의 후학들은 그 문화를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있다 한다.
이중춘의 수제자로는 문순실을 꼽을 수 있는데 문순실은 이중춘이 보유하고 있는 굿 기량을 지금까지 80% 이상 배웠다 한다. 이중춘은 심방일을 해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으며 앞으로 큰굿을 제대로 전승하기 위해 제주무속 학교 또는 연구회 등을 조직하여 후학 양성에 주력할 계획이라 한다. 이리하여 장차 쓸만한 남자 제자 몇사람 배출하고 싶다 한다.
이중춘은 남제주굿의 경우 이미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많이 쇠퇴하였고 북제주굿도 앞으로 고형을 얼마 지탱해 나가지 못할 것이라 한다. 옛날에는 남과 북의 제주굿이 약간 차이가 있었는데 북제주굿에서는 일월을 먼저 청하고 남제주굿에서는 본향을 먼저 청했다고 한다. 이 외에는 남과 북의 제주굿이 거의 같았다 한다.
이중춘은 과거에 경신회 회장, 칠머리당굿보존회 회장을 수년간 역임한 바 있는데 1980∼1982년 당시 파악된 제주 심방이 300여명이었으며 현재 육지에서 들어온 무당까지 합산하면 제주도 무속인은 대략 500여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고제 제주굿을 보유하고 있는 심방은 매우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중춘은 요즘 김윤보, 한생소, 문순실과 주로 굿을 하고 있으며 이밖에 현재 제주굿을 함께 할 만한 심방으로 김만보, 김윤수, 이정자, 정태진, 고순안, 이용순 등 10여명을 꼽고 있다.
이중춘은 16세 때 한살 연상인 오옥선과 혼인하여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으며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한다. 이중춘의 부인과 자손들은 모두 심방일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다.
제주도 심방들 사이에는 옛부터 변말(은어)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다. 그리고 예전에 제주도에는 연물을 제조하는 전문인은 없었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서 손재주있는 이들, 예를 들면 목수 같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나무 베다가 속 파내고 가죽 입혀서 북 등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육지에서 연물을 사오지 않고 모두 제주도 자체에서 제조해서 사용했다 한다. 옛 제주굿에서 사슴고기가 쓰이는 경우는 주로 산신굿을 할 때였다 한다.
이중춘이 살고 있는 행원리 마을에는 근래엔 잠녀굿이 없고 매년 음력 정월 2∼3일과 15일, 10월 15일에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중춘은 이 행원리 당제에서 굿은 안하고 염불을 치고 제사만 올린다고 한다.
이중춘은 음력 정월∼4월, 7월, 9∼11월에 굿이 가장 많고 음력 5∼6월, 8월, 12월은 비교적 한가하다고 한다. 제주에서 굿이 없을 때 이중춘은 일본 교포(주로 제주 출신자)를 상대로 환자굿 등을 하러 가는데 1년에 5∼6차례 정도 일본에 가며 굿을 하러 가는 길에 일본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일본무속학회 세미나에 나가 제주굿 강연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중춘은 일본어에 능해서 제주 집에 있을 때도 이따금 일본학자들이 전화를 걸어와 제주굿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곤 한다고 한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중춘은 부산까지 굿을 하러 갔다 한다. 부산 영도 주민의 상당수가 제주 출신이고 그런 까닭에 그쪽에서 굿을 청하는 일이 많아서 그 부산 거주 제주인들을 상대로 굿을 하러 자주 갔다고 한다. 이중춘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부산 영도에 제주 출신자가 무려 80%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중춘이 부산에서 굿을 할 때 김석출, 송동숙 등 동해안 무속인들과 제주도 심방들이 어울려 굿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부산에 거주하고 있던 제주 출신의 큰심방으로는 남제주 사람 주댁규, 행원 출신 강순애(강대경의 누이동생)가 있었다 한다. 주댁규와 강순애는 약 20년 전에 타계했다고 한다.(1999.2.5.16:30∼19:00.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행원리 826번지. 이중춘 자택 증언)
-- 이상 끝 --

2000년5월6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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