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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무속음악 큰심방 이중춘<2>
* 이 글은 1999년 한국고음반연구회 논문집 [한국음반학 제9호]에 실린 국악기록보존연구소장 노재명이 발표한 "20세기 후반 제주도 전통음악 현장조사자료와 음반목록"의 일부분이다.


제주도 무속음악 큰심방 이중춘<2>
현장조사,대담정리,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이중춘이 신굿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았다고 한다. 심방끼리 인정있게 서로 주고 받는 식으로 하여 음식값만 좀 많이 들었으며 심방들이 일당 받은 것도 거의 부조금으로 내놓고 거의 가져가지 않았다 한다.
이중춘 나이 40세 무렵까지는 심방끼리 부모, 친척, 형제 같이 사이가 좋았으나 지금은 서로들 너무 각박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남의 단골판을 침범하는 일이 많은데 예전에는 심방끼리 도의적으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다 한다. 이중춘은 최근 제주굿을 보게 되면 옛날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돌팔이 굿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심방이 굿을 하는 실력에 따라 상하 구별을 하여 굿 사례금을 분배했는데 예를 들면 10, 8, 6, 4, 2만원씩 심방에 따라 차등을 엄격히 두어 나누었다 한다. 굿을 주도한 가장 큰심방이 전체 금액의 30% 정도를 가져가고 그 나머지는 그외 사람들이 분배를 했는데 소미에도 상하가 있었다 한다. 그래서 이런 점 때문에 열심히 굿을 배우려고들 했으나 지금은 이런 관습도 사라지고 실력 구분없이 똑같이 돈을 가르니 굿을 착실히 익히려 하지 않는다. 이중춘은 돈에 탐닉하고 철학이나 예술 기예를 닦지 않는 요즘 젊은 심방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한다.
이중춘 부친 이원백 생존시만 해도 ‘신도회’라는 것이 있었고 그 대표격으로 도황수라는 존재가 있었다 한다. 그리고 신도회 이후에는 ‘경신회’가 그와 비슷한 구실을 했다 한다. 예전에는 바로 이 신도회에서 회의를 하여 입춘굿과 같은 큰굿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였고 이 회에서 인정을 해야만 빨간 관대를 입고 심방일을 할 수 있었다 한다. 신도회 회의는 북제주에선 시내에서, 남제주에서는 서귀포시에서 행했다 한다.
그 옛날 입춘굿을 지휘한 수심방은 도황수였고 입춘굿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고 반드시 남자가 주도하는 굿이었다 한다. 입춘굿은 입춘 때 관덕정에서 목사 앞에서 1년 액운을 막기 위해 행한 굿이었다고 한다.
도황수는 제주도에서 굿을 가장 잘하고 신의 내력을 제일 잘 아는 큰심방이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한다. 옛 도황수는 대개가 다 남자였는데 약 200년 전에 신황수라는 신씨 성을 가진 심방이 아주 유명한 도황수였고 1950∼60년대에는 이달춘, 이원백, 고봉선과 같은 도황수가 있었다 한다. 고봉선은 송당리 사람으로 작고한지가 20년이 넘었다 한다.
이밖에 이중춘은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한 큰심방으로 다음과 같은 이들을 꼽을 수 있다고 한다. 제주시에는 문옥선(女 장기:창), 화북 강종환(男 장기:덕담), 삼양 양금석(男 장기:춤/외모 출중), 신촌 정두삼(男 장기:굿족보), 조천 정주병(男 장기:신칼춤/정두삼의 아우), 함덕 고명선(男 장기:고분명두굿), 북촌 박인조(男 장기:구담 말명), 김녕 이달춘(男 장기:다방면/구학문) 한옥녀(女:한가멩) 강대경(男), 월정 임씨(女) 고씨(女) 한씨(女) 김씨(女) 강씨(女), 행원 이원백(男 이중춘의 부친) 한향림(女 이중춘의 모친), 한동 허정화(男 장기:추는굿), 평대 박산홍(女), 세화 고대중(男), 하도 강봉언(男 장기:초공맞이), 종달 이순애(女), 시흥에서는 이씨(女)가 큰심방이었다 한다. 이들은 모두 지금 생존시 100여세 안팎이 될 것이라고 하며 이들이야말로 굿형태, 연물, 신명 등 제주굿의 진정한 고형을 간직했던 마지막 세대라고 한다.
이중춘은 이들과 함께 굿을 많이 했는데 이 심방들이 함께 일을 하자고 하면 만사를 뒤로 하고 따라 나섰다 한다. 그것은 이들의 기예능을 많이 배우기 위한 욕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처럼 교류하는 심방들이 많아서 같이 굿을 하면서 서로 배우는 점이 많았다 한다. 다시 말해 춤, 창, 연물, 말명 등 서로의 장점을 그렇게 하여 자기 것으로 따낼 수 있었다 한다. 자기가 못하면 빨리 재주를 익히기 위해 잘하는 이를 껴넣어 굿을 하는 예가 많았는데 지금은 몇 사람이 끼리끼리만 굿을 하기 때문에 근래엔 굿이 잘 전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남제주에서는 큰심방으로 김용주와 박생옥이 유명했다고 한다. 이들 모두 남자로서 30∼40년 전에 작고했는데 지금 생존시 100세가 넘는 나이라고 한다. 박생옥은 자손이 없고 김용주는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들은 현재 제주시(?)에 살고 있으며 심방은 아니라고 한다. 이중춘은 일제 때 서귀포 심방 김수련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이중춘은 1986년 4월 10일 제주도 추는굿 중 영감놀이 부분으로 제주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한다. 영감놀이는 영감신을 달래기 위한 굿이라 한다. 영감신은 바다나 산에서 잘 노는 신으로서 노여움이 많은 신이기 때문에 이런 놀이로서 그 신을 즐겁게 해주고 달래서 보내는 것이라 한다. 해녀들이 바다일을 하다 이상한 걸 보고 놀라서 병이 되는 수가 있는데 그런 환자를 대상으로 해서 바로 이 영감놀이를 하는 것이라 한다. 연물 반주를 해가며 이 굿을 하면 그 환자가 절로 춤을 추고 귀신이 몸에 붙게 된 내력 등을 말한다고 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3,5,7일 또는 10일 이상 이 굿을 하기도 하는데 귀신이 사람 몸에 붙어서 놀다가 가는 만큼 얼마 놀다 가겠다고 하는 것까지 환자 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여기에 <서우제소리>가 나오며 영감신 일곱형제를 나타낸 일곱가지 모양의 탈을 만들어서 이 놀이굿을 진행한다고 한다.[계속]

2000년5월6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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