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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률 삼현육각, 서도소리 명인 김영택<3>
* 다음은 2000년 여름 발매 예정인 '김영택의 국악세계' 음반(CKJCD-003, 1CD, 섭외·기획·해설 집필:노재명) 해설서에 실릴 원고이다.


김영택 명인의 생애와 예술<3>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김영택의 고향인 은률 차유동 마을 외에도 안악군 대악면 한복리와 안국리에 ‘산이촌’(재인 집단 거주지)이 있었다 한다. 한복리에는 일제 때 산이 가족이 네가구 있었는데 이 가운데 삼현육각 육잽이를 잡혀서 회갑 잔치집 등에 일을 나갔다고 한다. 그중 신태호란 이가 있었는데 서도소리, 피리 명인으로 김영택보다 25세 가량 연상이었다 한다.
안국리에서는 김응관, 김봉관이 유명했다 한다. 이 가운데 김응관은 서도소리, 피리, 장고 명인이었다 한다. 김응관은 김영택보다 25세 정도 나이가 많았다 한다. 그리고 김봉관은 안악군 대악면 한복리 태생이며 김응관(남자)의 사촌 남동생으로 서도소리 명창이었다 한다.
또 옹진 사람 중에서는 박동신(피리 명인), 갈매기(별호), 황일청이 유명했다 한다. 갈매기라 불린 이는 서도소리, 피리, 장고, 북 명인이었으며 황일청은 피리 명인으로 김순명보다 2세 연상이었다 한다. 황일청은 옹진에서 태어나 나중에 송화군 하리면 노정리(가름마을)로 이주하여 살았다 한다. 황일청은 김영택이 젊었을 때 가장 많이 일을 함께 다닌 연주자로 1948년까지 8∼9년간 함께 연주활동을 했다 한다.
송화에서는 장기선(남자)이 모개비였는데 그는 서도소리, 장고, 북 명인이었고 그의 남동생 장기복은 장고, 북을 연주했다 한다. 장기복은 장기선보다 2∼3세 연하였고 김영택의 기억에 의하면 장기복이 토끼띠였던 것 같다고 하며 김영택보다 40세 가량 연상이었다 한다. 그리고 송화에서 황세현이 활동한 바 있는데 그는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송화에서 살았으며 서도소리, 장고 명인이었다 한다.
송화에는 산이가 두패 있었는데 그 한패인 장기선, 장기복, 황세현, 황일청 같은 이들은 하리면에서 활동했고 또다른 한패는 도원면과 연정면이 거점이었다 한다. 도원면과 연정면 쪽에서 활동한 이는 최경명, 이승구, 이상운, 이생필, 박기호, 이만복 등이라 한다.
이 가운데 최경명은 김영택의 외사촌형으로서 일명 ‘꽃바위’로 불리기도 했다 한다. 최경명은 황해도 송화군 도원면 매교리에서 태어나 황해도 자룡군에서 한명인에게 피리를 사사했고 김순명한테 서도소리를 배웠으며 장현예기조합 소리선생이었다 한다. 김영택은 최경명한테 <배뱅이굿>을 잠깐 배웠다 한다.
이승구(남자)는 피리, 대금 명인이고 이상운은 이승구의 아들로서 <배뱅이굿> 등의 서도소리를 잘했다 한다. 이생필은 이승구의 조카로 피리 명인이었다 한다. 박기호(남자)는 피리, 대금, 장고, 북 명인이었고 이만복은 서도소리, 장고, 북 명인이었다 한다. 이만복은 옹진이 고향인데 혼인 후 송화군 도원면 매교리의 처가집으로 거처를 옮겨서 활동했다 한다.
장연에서는 한양준(피리 명인)이 모개비였고 그 외에 한광준, 이원삼, 김경성과 같은 이들이 유명했다 한다. 한광준은 한양준(남자)과 사촌간이고 김영택의 넷째 누나 김오째와 혼인하여 김영택한테는 매부가 된다고 한다. 한광준은 장고, 북 연주자였다 한다. 이원삼(남자)은 퉁소, 장고 명인이었다 한다. 김경성(남자)은 피리, 장고, 북 연주자였다 한다.
신천에서는 한명인과 이상호가 모개비였고 그 외에 임수천, 장도찬(피리 명인), 장득찬(배뱅이굿 명창)과 같은 이들(모두 남자)이 있었다 한다. 한명인은 김순명보다 2∼3세 연상으로 평양중앙방송국의 전속악사(피리 연주자)였다 한다. 한명인은 황해도 자룡군의 서도소리, 피리 명인 한주희와 친척간이라 한다. 이상호는 김영택보다 10세 정도 연상이고 피리 명인이라 한다. 임수천은 장고 연주자로서 김영택 부친의 매제가 된다고 한다.
위에 언급되어 있는 이북의 세습 국악인들 가운데 6.25전쟁을 전후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산이는 김영택, 최경명, 박동신 뿐이고 이중 김영택만이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한다. 김영택은 남쪽으로 내려와서는 주로 최경명과 은률 삼현육각 쌍피리를 맞췄다 하며 박동신과는 몇차례 쌍피리 연주를 함께 한 바 있다 한다.
김영택의 말에 따르면 김관준과 그의 아들 김종조는 산이가 아니라 한다. 김영택은 평남 용강군 귀성면 원당리 김관준의 집에 두번 가본 바 있다 한다. 김영택은 그때 김관준의 <수심가>를 한번 들어보았는데 소리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한다. 당시 김영택의 나이는 약 15세, 김관준은 50세 정도였으며 그때 김관준은 이가 하나 빠져있었다 한다. 김영택이 김관준을 만난 것은 당시 김영택이 평남 증산군의 우편 배달부였던 큰형 김영춘과 귀성면 대룡리에서 염전일을 했던 셋째형 김영록을 보러 갔다가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대룡리와 원당리는 7리 정도의 거리라 한다. 김관준의 출생지는 평남 용강군이라 한다.
김종조는 김영택이 목격했을 당시 총각이었는데 상처한 부친 김관준을 모시고 원당리 외딴 곳에서 함께 살았다 한다. 이 부자가 마을에서 동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 것은 광대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을 피해서 마음껏 장고치고 소리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김종조는 처음엔 부친 김관준이 하는 소리를 어깨 넘어로 듣고 익혀서 불렀는데 김관준이 어느날 우연히 아들 김종조가 하는 소리를 듣고 대견하게 여겨 본격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한다. 김종조는 일제 때 서도소리 <발림엮음>을 작곡했고 이를 유성기음반에 취입한 바 있다 한다. 김종조는 김영택보다 15세 가량 연상이며 고향은 평남 용강군 귀성면 원당리라 한다.
최순경은 평안남도 사람이며 목성음이 탁성이었고 1948년에 황해도 황주군 괴면포에서 아편으로 작고했다 한다. 최순경은 김영택보다 15세 가량 연상이었다 한다.
김인순은 평남 강서군 태생으로 용강군에서 살았는데 얼굴이 조금 얽은 이가 <배뱅이굿>을 아주 잘했다 한다. 김인순은 진남포의 삼화권번에 소리선생으로 있었다 한다. 김인순은 김종조보다 15세 이상 연상이고 김영택의 나이 20세 무렵에 40대 이상이었다 한다.
김영택은 1940년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봉산탈춤 음악을 녹음한 김경석, 방영환, 김영찬, 김학원, 김성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한다. 그리고 김영택은 1930년대 후반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서 서도 탈춤 음악을 취입한 임성운, 안명환, 김재호에 대해 아는지 물었을 때 임성운과 안명환은 모르는 사람이고 김재호는 김영택의 팔촌형이라고 하였다.(혹시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 김영택의 팔촌형 김재호는 김영준보다 1∼2세 연하인데 피리 실력은 잘 모르겠으나 해금을 매우 잘했다 한다.[계속]


2000년5월6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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