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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성우향 증언<5>
* 이는 노재명 저서 『판소리 명창 성우향』(경기 고양:지구레코드, 1998)에 실려있는 글이다.

판소리 명창 성우향 증언<5>
증언/성우향
대담 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1983년에는 서울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심청가 연창 발표회를 열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공연, 음반 취입, 방송, 제자 지도, 성서 판소리를 작창하는 등 분주하게 활동하였다. 1984년에는 (주)현대음반의 ‘단가 2집' 카세트테입(1988년 제작)에 단가 <철인가>와 <진국명산>을 녹음했다. 이 무렵 나는 진봉규씨와 헤어졌다.

1985년 나는 서울시 관악구 신림5동에 사단법인 판소리보존연구회 분실(성우향 판소리 전수소)을 개원하여 제자 양성에 한층 더 주력했다. 그 판소리 전수소에서는 한때 매월 셋째주 토요일에 판소리 감상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5년부터 약 10년 동안 국립창극단 단원들에게 춘향가와 심청가를 가르쳤다.
1986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김세종제 춘향가를 완창 발표했다. 당시 고수는 김명환 선생님이 맡아주셨는데 너무나 긴시간 동안 홀로 반주를 해주시어 공연이 끝났을 때는 선생님께서 다리가 펴지질 않아 두 사람이 양쪽 팔을 부축해 들려 나오셨다. 그 해에 나는 김세종제 춘향가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1987년(문예회관 대극장)부터 지금까지 여유가 생길 때마다 그간 배출한 제자들을 모아 ‘성우향 제자 발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제자를 이끌고 산에 들어가서 함께 공부를 한다.

1988년에는 KBS 국악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93년 전북 남원시민회관에서 춘향가 전반부 발표회(고수:추정남)를 가졌고 1994년에는 서울 국립국악원 소극장에서 열린 '94일요명인명창전 공연에 한농선씨, 성창순씨, 오정숙씨, 남해성씨 등과 함께 참가하여 남도민요 <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흥타령>, <농부가>, <남원산성>, <성주풀이>,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같은해 1994년 나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성우향 판소리 인생 55년 기념 발표회’를 가졌다.

1995년, 1998년, 1999년에는 지구레코드에서 나의 판소리 춘향가(1974년 공연실황), 심청가(1976년 공연실황), 흥보가(1977년 공연실황) 독집 음반이 각각 세상에 나왔거나 앞으로 발표된다.
1995년 무렵 나는 서울 국립국악원 소극장 ‘남도민요의 밤’ 행사에서 박송희 신유경 조순애 남해성 한농선 성창순 박계향 신영희씨 등과 함께 남도민요 <육자배기>, <개고리타령>, <흥타령>을 공연했다.

1996년 나는 서울여자대학교 예배실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롯데화랑에서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공연했다.(고수:조영제) 그리고 같은해 1996년 서울 국립국악원 소극장에서 열린 ‘서울예술전문대학교 국악과 개설 15주년 기념연주회’에 참가하여 판소리 춘향가 중 <긴 사랑가>(만첩청산)∼<‘궁’자 노래>를 공연했다.(고수:박종선) 1997년에는 서울음반의 ‘득음’ 음반에 판소리 춘향가 중 <천자뒤풀이>를 취입했다.(고수:김성권)

1998년 5월 16일에는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단가 <백발가>(박록주제)와 판소리 춘향가 전반부(정응민제)를 공연했고 지구레코드에서 ‘성우향 심청가’ 1976년 공연실황 음반을 냈다.
1998년 6월 13일 나는 KBS-1FM ‘흥겨운 한마당’ 방송에 출연하였고 1998년 6월 21일 서울대학교 호암생활관 삼성컨벤션센터에서는 ‘성우향 심청가 CD 출반 기념 제1회 보성소리 학술대회’가 열렸다. 같은해 7월 20일∼8월 20일에는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 산70-1에서 제자 30여명과 함께 판소리 산공부를 했고 그 공부 결과를 1998년 8월 22일 서울 신림5동 동사무소 대강당에서 ‘제44회 춘전 성우향 선생 문하생 판소리 발표회’를 통해 선보였다. 1998년 9월 27일에는 충남 홍주문화회관에서 열린 '98 한성준 춤 소리 기념 예술제에 참가하여 판소리 공연을 했다.

그리고 나는 1998년 1월 아리랑TV ‘Inside Korea-판소리’, 같은해 9월에는 KBS-1TV ‘국악 한마당-남도민요 편’, 같은해 11월에는 K-TV ‘우리가락 우리춤-배워봅시다’에 출연하여 판소리와 남도민요 창, 국악 강의를 방송한 바 있다.

나는 1982년부터 지금까지 10여개 학교에서 판소리 강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현재 (사)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 (사)판소리보존연구회 분실 원장으로 있다. 지금까지 내가 배출한 제자는 정회석, 안숙선, 은희진, 김영자, 강형주, 최영길, 김일구, 박양덕, 김수연, 유영애, 임향님, 정춘실, 이용길, 안애란, 채향순, 유연희, 김경숙, 오비연, 염금향, 최정희, 이선규, 조영제, 배일동, 김대균, 남해웅, 오현숙, 원미혜, 박노훈, 채수정, 민혜성, 오민아, 임현빈, 최용석, 정경화 등 500여명에 이른다.

<육자배기> 등의 민요는 판소리가 무르익기 전에 하면 소리를 버리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는 절대로 민요를 가르치지 않는다. 가끔 소리를 듣고 싶을 때가 있는데 요즘은 들을 만한 소리가 없다. 이제 제자들 옳게 가르쳐서 재미나게 듣는 게 유일한 낙이다.

판소리에서 발발성이 나오는 까닭은 선천적인 데도 이유가 있으나 대개는 입을 쫙쫙 벌리지 않고 부르기 때문이다. 박귀희씨의 소리가 발발성에 속한다. 판소리에 쓰이는 엇붙임으로는 잉애걸이, 완자걸이 등이 있고 ‘교대죽’이라는 말은 김명환 선생님한테 들은 바 있다. 김명환 선생님의 고법을 많이 배운 이로는 그레고리 배씨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언젠가 그레고리 배씨의 북반주에 맞춰 소리를 한번 꼭 해보고 싶다. 진양조를 예전에는 6박으로 했고 24박이 없었다. 24박 진양조는 김연수씨가 만든 것이다.

내가 부르는 단가로는 <인호상이>, <철인가>(예의동방), <강상풍월>, <진국명산>, <운담풍경>, <만고강산>, <천생아재>, <사철가>, <어화 청춘>, <공도난이>(백발가), <백발가>(백발이 섧고), <홍문연>, <소상팔경>, <편시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인호상이>는 성차옥씨한테, <철인가>와 <강상풍월>은 박초월 선생님한테, <진국명산>은 정권진씨한테 배웠고 나머지 단가는 스승 이름이 기억나지 않거나 특별히 배우지 않고 다른 사람이 부르는 걸 듣고 익힌 소리이다.

예전엔 무대에 나가면 거의 무조건 단가를 불렀고 그렇게 목을 풀고난 다음에 본청 잡아서 판소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유성기음반과 방송이 널리 퍼지면서 차츰 단가를 부르는 일이 줄었다. 왜냐하면 몇 분짜리 유성기음반과 방송에 맞춰 소리를 하다 보니 시간상 단가는 빼고 막바로 판소리 대목을 부르는 것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내가 부르는 구음은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고 그간 익힌 음악을 토대로 해서 즉흥으로 하는 것이다. 구음이라는 음악 자체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부르는 남도민요는 거의 모두 박초월 선생님한테 배운 소리제이다.

내가 현재 보유한 판소리는 보성소리가 주가 된다. 춘향가 전바탕, 심청가 전바탕, 적벽가 중 <천여척>∼<조자룡 활 쏘는 데>, 수궁가 초입∼<범 나오는 데>는 보성소리이다. 수궁가 나머지 대목은 정광수 선생님과 박초월 선생님의 소리제가 섞여있다. 흥보가는 박록주 김숙자 선생님의 소리와 내가 짠 소리가 섞여있다. 이 가운데 특히 보성소리 춘향가 초입∼<긴 사랑가>(만첩청산)에 판소리의 모든 기초가 다 들어있다.

내가 배운 보성소리 적벽가는 정권진씨, 박춘성씨의 녹음과 사설, 곡조, 성음 등이 다소 차이가 있다. 그리고 내가 배운 보성소리 수궁가 또한 안채봉씨, 정회석씨의 소리와 다른 점이 있다. 보성소리 적벽가 중 <오백 군졸 영솔>은 자진 중중모리에 덜렁제로, 수궁가 중 <영덕전 뒤로 한 신하가 들어온다>는 엇중모리에 평조로, <별주부 부인과 헤어지는 데>는 세마치에 평조로 불린다. 그리고 보성소리에서는 토끼가 세상에 나와 빌기를 다한 후에 막바로 범이 내려와 마주치는 대목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에 <상좌 다툼>이 없다.

보성소리는 서편제보다는 동편제의 특성이 더 강하다. 그리고 장단 붙임이 매우 다양하고 쓰이는 성음이 매우 웅장하고 남성적인 면이 많다.

보성소리 춘향가에는 본래 <쑥대머리>가 없는데 나는 그 소리를 다른 선생님 문하에서 배운 걸 삽입시켜 부른다.

나의 판소리 전수소에 걸린 김창환 선생님 등의 옛 명창들 사진은 오래전에 성순종씨가 나에게 준 것으로서 수십년 동안 보물 모시듯이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외래 음악이 크게 유행하여 국악은 우리 음악이면서도 오히려 낯설게 인식되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40년 무렵에는 외래 음악보다 우리 음악이 보편적인 정서였고 친숙한 음악이었다. 판소리가 늘 곁에 있었고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판소리를 동요로 따라 부르며 흥미를 가질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판소리 명창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숙명처럼 판소리에 뛰어 들어서 외길 인생을 살고 있는데 후회한 적은 없다. 높은 예술성과 세상 살아가는 진리가 담긴 판소리를 만난 것은 내게 후회스러운 일이라기 보다 다행한 일로 생각된다. 그리고 판소리라는 멋진 예술을 가꾸고 지켜 나가는 일이 매우 행복하고 보람있다.

나는 지금도 틈만 나면 산속에 들어가서 백일 공부를 한다. 지금도 소리 공부가 가장 재밌고 나한테 가장 잘맞는 취미 생활이다.

어떤 매력에 이끌려서 판소리에 몰두하였을까? 글쎄 생각해본 일은 없지만, 음, 늘 좋은 목이 나오면 아마 재미가 없을 것이다. 목이 풀렸다 잠겼다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신명이 나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기쁨을 찾는다. 몸이 붓고 말을 전혀 못할 정도로 수련을 하면 고통스럽지만 좌절을 이겨내고 갈망했던 소리를 얻으면(득음) 그것처럼 기쁜 일이 없다. 득음을 하고 나면 소리를 할 때 엄청나게 우렁찬 소리가 나와서 온몸이 진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요즘은 사회 환경이 판소리를 접하거나 공부하기가 무척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대중 매체가 서양 음악 위주고 국악은 외면 당하고 있다. 그리고 국악 애호가가 극히 적고 국악은 돈벌이가 안되는 예술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배우려 하는 이가 드물고 배우려 해도 경제적으로, 사회 환경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현재 국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불투명한 자신의 장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 젊은 국악 학도들이 산에 들어가서 백일 공부를 하려 해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둘째고 일단 귀명창이 드물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소리속을 알아주는 귀명창이 많다면 긍지와 희망을 가지고 국악에 매진할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국악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라에서나 대기업에서나 국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악이 계속 보존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앞 일을 생각하면 늘 걱정이 앞선다. 판소리에 매진하면 할수록 뛰어난 예술성에 반하고 이렇게 멋진 예술이 혹시 없어지거나 쇠퇴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평생 탐구한 판소리를 제자들에게 다 주고 가는 것이 소원이다. 판소리 전문학교를 만들어서 판소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게 하고 그런 곳에서 후학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없어져 가고 있는 보성소리 적벽가와 수궁가 일부라도 내가 배운 만큼은 되살려서 음반으로 남기고 공연으로 발표하려고 한다.<끝>


2000년5월2일

200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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