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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제 소리, 춤 명인 심화영 증언<2>
* 이는 문화관광부 선정 2004년 8월의 문화인물 김창조의 달 기념 특별 기획 전시회 도록 책자
[산조, 악기로 노래하는 삶의 이야기](서울:국립국악원, 2004년 8월 3일 발행, 비매품)
88~92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중고제 소리, 춤 명인 심화영 증언<2>
현장 조사, 정리/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심화영은 1913년 음력 8월 4일에 서울 파고다공원 뒷동네(종로구 익선동)에서 태어났고 4세 때 온양으로 이사하여 온양신창학교를 다녔고 3학년 때 서울 종로구 관철동으로 이사하여 이화학당을 다니다가 1년 후에 충남 서산군 서산읍 읍내리 1구로 이사하여 살았다. 심화영의 본적은 충남 서산이라 한다.
  심화영은 소학교를 졸업하던 13세 때부터 틈틈히 오빠 심재덕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심화영이 심재덕에게 배운 것은 단가 <백구타령>, <어화청춘>, 춘향가와 심청가 바탕소리, 흥보가 중 <저 아전>이라 한다. 심화영은 18세 때 온양 신창에서 지용구에게 양금을 배웠다.
  심화영은 20세 무렵에 강경에서 젊은 소리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충청도 출신의 김모(金某) 할아버지에게 서산에서 일주일 동안 시조를 배웠다. 그리고 심화영은 방모씨(方某氏)에게 심청가를 배웠고 충청도 사람 방영래에게 무용을 배웠다. 심화영이 20세 무렵에 방영래는 50대 중반이었다 한다.
  심화영은 젊었을 때 심재덕의 소개로 이북 청진에서 권번 소리 선생을 했다. 심화영이 청진에서 권번 소리 선생을 할 때 방영래, 심재덕도 함께 권번의 선생으로 있었다. 심화영은 20대 때 여러 지방에서 생활하다가 32세(1945년)에 서산으로 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다.
  심화영은 1946년에 송운석(농악)과 혼인하여 식당을 경영한 바 있고 심화영의 남편은 1982년에 작고했다. 심화영은 현재 서산 시내 놀이터에 있는 노인정 ‘양유정’에서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심화영은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심화영이 현재 부를 수 있는 소리는 단가 <백구타령>, <어화청춘>, <만고강산>, 판소리 춘향가 중 <초입>(절대가인:휘모리), <방자 나귀 안장 짓는 데>(간략), <적성가>, <금출지 내력>, <그른 내력>, <천자뒤풀이>(자시에 생천>, <긴 사랑가>(만첩청산), <자진 사랑가>, <‘정’자 노래>, <이별가>(왼갖 생각), <춘향모 탄식>, <허허 이게 웬말이냐>, <오리정 이별>, <쑥대머리>, <어사 출도>, <과부 등장 나가는 데>, <이화춘풍>, 심청가 중 <범피중류>, 흥보가 중 <저 아전>, 남도민요 <보렴>, <육자배기>, 구음, 시조 몇 수이다.
  심화영이 배운 춘향가에는 <춘향집 경치>와 <‘궁’자 노래>가 없고 춘향과 이도령이 춘향모의 허락을 받고 사귀는 사설로 배웠다 한다.
  심화영의 말에 따르면 구음은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하며 본인은 <육자배기>의 경우 특별한 스승의 지도 없이 강경의 어느 소리 교습소에서 어느 남자 사범이 가르치는 걸 곁에서 듣고 그땐 정신이 좋으니까 곧바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또 이화중선의 공연과 음반을 접하고 금새 따라 부를 수 있었고 그리하여 그 소리를 터득하였다 한다.
  충청도 출신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동진의 소리는 심화영이 부르는 소리와 많이 다르다 한다. 예전에는 판소리 버린다고 가야금병창은 잘 가르치지 않았다 한다.
  심화영은 1999년 12월 충청남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다. 심화영은 요즘 승무를 배우러 오는 이들이 많아 분주하게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다.(1995.5.15,1995.5.19,1998.7.16,1998.10.2.심화영 증언)

200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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